▲ 콩코민주공화국 난민들에게 배식하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전임 사무총장은 코피 아난 전 총장이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유엔사무총장에 흑인으로는 처음 선출됐고, 반기문 총장이 두 번째를 이었다. 각각 가나와 한국 출신으로 미국과 유럽의 시각에서는 ‘제3국 총장’이라는 점도 같다.

 

그러나 행보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뤘다. 자존심이 강하고 강직한 성격을 가졌던 코피 아난 전 총장은 ‘강한 UN’을 표방했다. 친미성향이던 코피 아난 총장은 미국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국 패권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동티모르 분리독립 등 국제분쟁에 적극 개입했다. 불만을 품은 미국이 유엔 분담금을 주지 않자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미국을 대놓고 공격했다. “유엔이 돈에 쪼들린다면 이익을 보는 것은 우리가 응징하려는 침략자, 인권침해자,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유엔의 승인이 없는 침공은 불법”이라며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던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인생에 하이웨이는 없다”는 자신의 좌우명처럼 소신껏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차 대전에 승전했던 상임이사국들의 입김이 좌우하는 유엔에서 미국의 전쟁을 막는 것에는 내재적 한계가 존재했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뜻대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수행했다.

강직했던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연임에 성공한 뒤 유엔 역사상 최악의 부패스캔들에 연루된다. 이라크 전쟁 후 유엔은 ‘식량-석유 교환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던 이라크에게 석유수출의 길을 열어주고 대금을 식량과 의약품 등 생필품으로 치르는 방안이다. 그런데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회사가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친인척에게 뇌물을 줬다는 폭로가 나왔다. 200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임기 말로 갈수록 악재들이 겹쳤다.

콜롬비아 대학의 에드워드 럭 교수는 “코피 아난 총장의 개인적 인기는 여전히 높지만 그가 이끌었던 유엔은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유엔의 평판이 낮아졌다”며 “말과 행동 등 아이디어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사이의 차이”라고 평가했다.

 

▲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과 반기문 총장의 비교

유엔의 위기상황에서 등장한 반기문 총장은 임기 초기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미국 언론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각종 국제분쟁에 명확한 입장을 표하지 않는 반 총장의 스타일이 빌미가 됐다. 이는 전임 코피 아난 총장과 비교돼 더욱 부각됐다. 유엔 상임이사국 등 강대국과 맞서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코노미스트 등 비판적인 언론은 “아첨꾼(poodle)”이라고까지 비아냥댔다.

 

그러나 10년의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반 총장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지난 14일 71차 유엔총회에서는 ‘반 총장에 대한 경의’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피터 톰슨 유엔총회 의장은 성명을 통해 “반기문 총장의 뛰어난 업적에 대한 경의가 총회의 만장일치 결의로 채택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며 “반 총장은 헌신적인 프로페셔널리즘과 공동선을 위한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유엔을 이끌어왔다”고 극찬했다.

10년 전 임기를 시작한 반 총장이 먼저 한 일은 관료적이고 경직된 유엔 내부를 개혁하는 일이었다. 태만한 근무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오전 8시 회의를 시작했고, 방만한 예산사용을 점검했다. 또한 유엔의 핵심간부들의 일괄사표를 요구했다. 각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것이 필연적인 유엔이지만, 적어도 사무국 내부에서는 일원화된 체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반 총장의 비판적인 언론들 대부분이 “부지런하다”는 평가에는 박하지 않았다. 유엔 내부에서 반 총장에 대한 비판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가 크다. 

무엇보다 반 총장의 업적은 ‘유엔 무용론’을 불식시켰다는 점이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사례처럼 유엔은 강대국의 입김 속에 국제분쟁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존재했다. 유엔의 역사적 사명이 다했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 총장은 국제분쟁 보다는 성소수자, 성평등 등 인권 사각지대의 문제를 유엔의 의제로 끌어오는데 성공했다. 유엔이 세계평화를 위해 필요한 기구라는 점을 재차 부각시킨 내용이다. 나아가 기후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파리기후협약’을 이끌어냈다. 각국이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합의된 것은 반 총장의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 총장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평론가 리처드 고완은 고별칼럼에서 “유엔의 내재적 문제를 바꿀 수 있는 여지에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조금 더 창의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리더였다면 (시리아/남수단) 비극을 완화시켰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하다”면서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비준시키려는 그의 확고하고 헌신적인 노력은 성공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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