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헬기 개발에 따른 산업파급효과 12조 이상, 승수효과 천문학적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용 헬기 도입 시 자국산 우선 구매해야
이동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국내사업본부 본부장(전무)는 “그래서 트럼프가 부럽다”고 했다. 단지 ‘국산’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괄시하는 국내 사정과 비교하면 ‘차라리’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가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해낸 토종헬기를 보유하고도, 우리 정부가 외산헬기에만 집착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표현인 셈이다.
◇ “외산헬기 선호… 그것이 ‘최선’입니까”
“수리온은 국책사업으로 약 1조3,000억원의 개발비를 정부에서 투자해 개발된 순수 국산헬기입니다. 쉽게 말해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된 헬기라는 얘기죠. 하지만 여전히 국산헬기를 외면한 채 외산헬기를 선호합니다. 우리 기술력으로 탄생한 자랑스러운 헬기를, 정작 우리 정부와 지자체가 외면한다면 그런 제품을 세계 어느나라에 가서 팔수 있겠습니까.”
우리 정부가 국산헬기 개발에 착수한 것은 외산헬기들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다. 국내 정부기관에서 운용중인 헬기의 97% 가까이는 외산헬기다. 헬기 구매와 운용 유지에 필요한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우리 헬기’를 만들자고 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리온’이다. 수리온은 현재 육군·해병대와 같은 군용을 비롯해 경찰·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우리 군의 전력과 국민 안전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용 헬기 시장 진입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방산무기의 공공조달에서 자국산 우선 구매는 세계적 추세다. 국산 헬기의 국내시장 진출 확대가 수출 지원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기관용 헬기 도입 과정에서 여전히 숱한 벽에 가로 막힌다. 수리온의 해외 수출 상담을 할 때마다 한국 정부가 수리온을 얼마나 운용하는지를 질문 받지만, 자신있게 ‘자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이동신 본부장은 한숨을 뱉어낸다.
실제 수백억에 달하는 헬기비용과 이후 운용·유지수리비 등이 모두 국민세금으로 치러져야할 비용이다.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돈 아니다’라는 인식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가장 난관을 겪고 있는 것은 수리온을 기반으로 한 ‘소방헬기’다. 소방헬기를 사용해야하는 각 지자체 소방본부에서 외면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소방헬기 도입사업을 추진하던 서울소방(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은 항속거리·운항시간·탑승인원 등 모든 스펙을 절묘하게 높여 수리온은 아예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이미 점찍어둔 외산 헬기를 들여오기 위해서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 “메이드 인 코리아가 부끄럽습니까”
수리온 소방헬기를 외면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부분 한결같다. 수리온의 수용능력보다 ‘조금 더’ 높은 것을 요구하고 “너희들은 이 스펙을 못 맞추지 않느냐”는 식이다.
예컨대, 한 번에 20명을 실을 수 있는 헬기를 점찍어두고, 수리온은 17명 정도밖에 못 실으니 안된다고 한다. 외산헬기 1대 가격으로 수리온 2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하면, 조종사가 한 명 뿐이어서 안된다고 발을 뺀다. 외산헬기가 한 번에 20명을 구조할 동안, 2대의 수리온은 모두 34명을 구조할 수 있는데도 귀를 닫는다. 부품가격을 낮춰 제공할 경우 정비사·조종사를 더 뽑을 수 있고 세금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해도 결국 돌아오는 건 “우리는 ‘무조건’ 20명을 태울 수 있는 헬기가 필요하다”는 답변이다. 원점이다.
수리온의 ‘안전’에 대한 논란은 이런 ‘맹목적인 외산헬기 선호’의 배경이 되고 있다. 군용으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소방헬기(민수)로는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수리온은 헬기 유리창(쉴드)에 금이 가고 엔진 이상으로 비상착륙을 하는 등 잇단 말썽으로 곤욕을 치러왔다. 하지만 이동신 본부장은 이런 지적에 가슴을 친다.
“수리온은 방위사업청의 군용 형식인증 및 감항인증을 받은 항공기가 맞습니다. 민수용 안전은 검증되지 않지 않았느냐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수리온은 개발초기부터 민수인증 기준인 FAR 규정을 병행 고려해 개발, 약 97%의 인증기준이 동일합니다. 나머지 상이한 인증기준도 항공기의 비행안전성과는 무관한 군용과 민수헬기의 편의성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국내의 소방이나 산림청의 다수 기관에서 군용으로 개발된 항공기를 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별감항증명 제도를 활용하여 해당 기관의 임무에 문제없이 운용중에 있습니다. 공인된 기관에서 인증한 비행기를 다른 국가기관이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하지만 수리온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헬기다. 국민들을 위해 쓰여야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공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의무다. 안전이 검증된데다, 특정 업무 수행 능력이 충분한데도 설득력 없는 핑계를 대며 국산헬기를 홀대하는 이유가 단지 ‘메이드 인 코리아’여서라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한 헬기 조종사는 “수리온 보다 외산헬기가 더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자동차로 비교하자면, 외산헬기가 벤츠급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그래서 조종사들이 외산헬기를 더 선호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조종사는 “수리온을 직접 조종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수리온의 촌스런 국산품애용 전략이 아니라, 70∼80년대 맹목적인 ‘미제’ ‘외제’ 선호사상이 여전한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다.
그만큼 수리온을 향한 ‘오해’는 많다. 이동신 본부장이 할 말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이동신 본부장은 정부기관이 수리온 도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고 강조한다.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외화유출 방지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수리온은 많은 대기업과 1-2-3차 협력업체 등이 함께 협력해 만들어집니다. 엔진은 한화테크윈, 항전은 LIG넥스원, 타이어는 금호, 꼬리는 대한항공, 바퀴는 위아 등 국내 대기업이 협력업체로 다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최종조립을 합니다. 수리온 1대를 구매하면 협력업체 일자리창출은 물론 나아가 산업발전까지 200억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1호 정책’인 일자리 창출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 즉 ‘고용창출’을 경제 선순환 구축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일자리가 생겨야 가계소득을 획득할 수 있고, 가계소득이 증가하면 자연적으로 소비가 늘고, 또 소비 증가는 기업 매출과 수익 확대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투자 활성화와 고용 증가라는 선순환 궤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제조업이 고용창출 효과나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똑같은 1조 매출이라도 금융업이 올리는 것과 제조업이 올리는 것은 ‘승수효과’가 다르다.
“‘내수진작’이라는 게 생필품 같은 소비재가 전부인줄 알지만, 실제 최상위는 공산품입니다. 공산품을 생산판매하는 회사들이 매출이 늘어나면 생활 소비재를 수요하게 되는 것이 산업의 사이클입니다. 수출도 중요하지만, 100억 규모라 하더라도 수출은 ‘팔고나면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정부기관에서 국내 제품 50억 규모를 구매하면 제품에 대한 부품공급·정비인력 등 유지관리를 위해서라도 협력업체 인력고용 등 부가가치 창출이 꾸준히 이어집니다. 헬기의 경우, 운용기간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효과는 엄청나다는 얘기입니다.”
“국산을 써라, 인력도 국내 인력을 쓰고, 특정 프로젝트에는 반드시 미국산 철강제품을 쓰게 하라.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가 부러운 것은 비단 저희뿐일까요. 관공서 차량의 경우, 대부분 국내 H사의 차량을 사용토록 권합니다. 국내 대기업 총수들도 H사의 차를 탑니다. 대기업 회장들이 돈이 없어 벤츠나 BMW를 못 사겠습니까. 그런데도 H사의 차를 타는 이유는 뭘까요. 더구나 수리온은 우리 국민들 세금이 들어간 헬기입니다. 국민들을 위해 쓰이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도 입찰이든 검토든, 고려조차 않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수리온은 ‘비상(飛上)’이 아니라 ‘비상(非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