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손 김성민 씨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사저는 김영삼민주센터에 증여됐으나, 민주센터의 악성부채로 압류 위기에 놓이자 유족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소미연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가 매각됐다. 매입자는 김성민 씨다. YS의 서거 당시 영정사진을 들었던 장손이다. 그는 건강이 좋지 못한 아버지 은철 씨를 대신해 삼촌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와 함께 상주의 자리를 지켰다. 장손의 어깨는 무거웠다. 올해 28세에 불과하지만 본인의 명의로 7억원(채권최고액 8억4,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압류 위기에 처한 사저를 지키기 위해서다.

◇ 김영삼민주센터 악성부채로 압류 위기

사저의 매매 거래가는 11억원이다. 부족한 4억원은 다른 유족들이 십시일반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평당 2,000만원에 거래되는 주변 시세를 고려하면 약 20억원으로 산정되지만, 반대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역사적·정치적 가치 보존 차원에서 매매가 극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매매 조건이 제3자가 받아들이기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어 유족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은 공사를 시작한지 5년이 넘도록 완공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센터의 부실 운영 탓이다. YS의 전 재산 기부에도 불구하고 자금난에 빠지자 유족들은 사저 재매입을 통해 일부 부채를 떠안았다. <뉴시스>

YS는 생전인 2011년 1월 전 재산 52억원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했다. 단, 사저의 경우 ‘생존에 있는 동안은 계속 사저에 머물겠다’는 특약을 제시했다. 물론 손명순 여사도 포함된다. 따라서 사저에 대한 재산권 행사는 손명순 여사의 사후에 가능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재로 운영하기 위해 관련 지자체가 매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됐다. 결국 때 이른 사저 매각은 민주센터의 부실 운영 때문이다.

민주센터는 YS의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10년 6월 설립됐다. 대표적 사업은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건립이다. 2012년 4월 그 첫 삽을 떴으나, 5년이 지난 지금도 개관하지 못했다. 도리어 각종 세금과 건축대금 미납 등으로 빚더미에 올라 지난해 12월 압류 조치됐다. 다음으로 상도동 사저가 압류 위기에 놓였다. 이와 관련, 김현철 교수는 지난 2월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악성부채를 우선 청산하겠다”며 사저 매각 소식을 알렸다.

김현철 교수에 따르면, 당초 유족들은 사저 매각 대신 도서관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실제 지난 연말 서울시와 협상을 서둘러 시작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부채가 있는 건물은 기부채납이 어렵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었다. 사저 매각을 피할 수 없었다. 김현철 교수는 “우리 입장에선 자산이 부채보다 많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후 김현철 교수는 “민주센터의 한심한 운영으로 발생한 부채의 일부를 할 수 없이 유족들이 떠안기로 의견을 모으고, 긴급대출을 통해 사저를 재매입함으로써 압류당할 위기를 모면했다”고 다시 한 번 전했다. 지난 3월9일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하지만 <시사위크>에서 확인한 결과, 사저의 매매는 이미 김현철 교수가 매각 소식을 알린 2월16일 이뤄졌다. 다음날엔 민주센터에서 장손 김성민 씨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등기가 접수됐다.

◇ ‘유족의 품으로’ 손명순 여사 위해 재매입

상도동 사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측근은 “YS의 재산 기부에 동참하면서 상속을 포기했던 자식들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사저를 매입해) 사실상 두 번을 기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뉴시스>

상도동 사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측근은 기자에게 “영부인이 생존해 계시고, 향후 문화재로 등록해야 할 사저인데 그런 조건으로 매입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결국 유족들이 희생했다. YS의 재산 기부에 동참하면서 상속을 포기했던 자식들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민주센터의 빚을 일부 떠안으면서 사실상 두 번을 기부하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사저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유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한편, YS의 상도동 사저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린다. YS가 1969년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뒤 2015년 11월 서거하기까지 46년간 생활하면서 투쟁의 현장으로 기록됐다. 3선 개헌을 추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라고 비판했다가 자택 앞에서 초산테러를 당했고, 전두환 정권 시절엔 가택연금으로 자택 안마당에 발이 묶였다. 23일간 목숨을 건 단식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YS를 따르는 정치인들을 ‘상도동계’로 부를 만큼 상징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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