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최영훈 기자] 한국의 정치지형은 ‘보수6:진보4’의 비율이었다. 진보진영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며 선거 때마다 승리의 환호 보다는 패배의 탄식에 더 익숙했다. 그러나 19대 대선을 분수령으로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보수진영의 와해로 진보7, 보수3을 말하는 시대가 왔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8대 2를 말하기도 했다.

이는 지지율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7%에 불과했다. 같은 보수정당인 바른정당과 지지율(9%)을 합쳐도 16%에 불과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절반에 가까웠고 여기에 정의당(7%), 국민의당(5%)까지 합치면, 진보진영 지지율은 60%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39%)이 나머지 정당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차이는 분명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가능>

◇ 8대 2, 보수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보수진영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존재감을 드러내 지지율을 높여보고자 고군분투하지만 ‘백약이 무효’다. 야권의 한 청문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청문회 목적에 맞게 오전에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위주로 검증을 했는데, (지도부에게) 혼났다. 강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국민들이 우리를 좀 보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오후 질의는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우리도 답답하다.”

전당대회를 통한 컨벤션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통합과 쇄신, 보수위기 해법 보다는 후보자들의 신경전과 갈등만 부각되면서 국민적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전당대회 장소도 당초 계획했던 킨텍스에서 국회 헌정기념관으로 바꿨다. 잠실에서 성황리에 열렸던 지난해 8.9 새누리당 전당대회와 비교하면 위축될 대로 위축된 모습이다.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지지율 총합 비교. 진보정당에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을 포함했고, 보수정당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구 새누리당을 비교했다. <데이터=한국갤럽>

이 같은 상황에 진보진영 정치인들은 쾌재를 부를법하다. 이미 민주당 내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와 재보선 낙승을 예상하며 희희낙락한 분위기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체를 봤을 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견제 없는 일방의 독주는 국가운영에 있어 가장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듯 민주주의도 견제와 균형이 핵심이다.

진보진영의 인사들도 같은 맥락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2007년 대선패배 후 끝없는 내리막길을 경험했던 진보진영 중진의원들의 우려는 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심각해진 양극화 문제나 국정농단 사건도 진보진영의 와해로 견제를 못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책임을 통감했는지 한 중진의원은 “잘 찾아오셨다”며 마음속의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 ‘폐족’ 경험했던 진보인사들 “현실을 직시하라”

공통적인 조언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여기에 부화뇌동했던 계파정치, 교만함을 먼저 반성하지 않고서는 ‘혁신’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제거해야 국민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결정 후 마지막으로 열렸던 촛불집회의 모습. 진보진영 중진의원들은 보수가 촛불민심을 먼저 직시해야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뉴시스>

6선의 문희상 의원은 “왜 이렇게 됐는지 자기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수의 현실은 한마디로 궤멸직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국운영의 방만함과 교만함이 탄핵과 정권교체로 귀결된 것이다. 이 현실을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이것을 그대로 믿지 않고 현실을 호도하면 남은 것은 괴멸이다. 단순히 보수의 궤멸이 아니라 한국 정치가 그만큼 후퇴하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쉽지만 행동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문희상 의원은 잘 알았다. 2007년 대선패배 후 겪었던 진보진영 위기를 실제 겪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심정적으로 지금은 모르는 척 하고 싶을 것”이라고 공감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뼈를 깎는 자성이 절실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참여정부 핵심들이었던 ‘친노’ 세력들은 스스로 폐족선언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전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었다.

문 의원은 “(2007년과) 상황은 지금 비슷한 데 여야가 뒤바뀐 거다. 그 때는 진보가 교만해서 무너진 상태였다. 우리는 자성과 성찰을 했고 이를 갈고 준비했다”며 “본질을 꿰뚫고 직시하면서 반성해야 한다. 보수가 지금 그것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위기를 극복하면 얼마든지 과거의 위세를 되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5선의 원혜영 의원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보수가 기반이다. 정치적으로 보수가 몰락한 것은 일상적이라기보다 특수한 상황”이라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이 있었고, 정치세력으로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지속적으로 보수가 위축돼 힘을 못 쓰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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