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는 취재진의 취재 열기로 집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변호인 측은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 중이라고 전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애엄마라고 해도 이제 22살밖에 안됐는데 너무 하는 게 아니냐.” 취재진을 향한 따끔한 질타였다. 뜨거운 취재 열기로 정유라 씨가 “감옥 생활과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내 유료 주차장을 관리하는 직원 A씨는 “기자들 때문에 보통 힘든 게 아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빌딩을 찾아오는 기자들마다 실랑이를 벌였고, 이따금씩 한숨을 내쉬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11일, 정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 정씨의 변호인 측은 이날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됐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만큼 증언이 어려운 상황인데다 건강마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 측근은 기자에게 “정씨가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토를 했다. 지금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두 돌배기 아들을 돌보는 게 쉽지 않고, 생필품조차 사러 나갈 수 없는 ‘갇힌 생활’이 정씨를 더욱 힘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씨는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 전날 밤 무슨 일이… 하루밤새 입장 바뀐 정유라

정씨가 칩거 중인 미승빌딩 윗층의 불빛도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들어왔다. 빌딩 내 상가 관계자들은 “정씨가 얼굴을 드러내고 다닐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는 점에서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바깥을 오갈 것”으로 추측했다. 미승빌딩은 지하 2층 지상 7층 건물로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이나, 기자가 방문한 11일에는 4~6층의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7층은 아예 버튼이 없다. 정씨는 6~7층을 주택으로 사용 중이다. 1층 음식점과 3층 마사지샵을 제외하곤 공실 상태다.

당초 정씨의 어머니 최순실 씨는 미승빌딩을 급매로 처분할 계획이었으나, 법원이 지난 5월 특검팀에서 제기한 약 78억원의 추징보전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매매 등의 거래가 막혔다. 이로써 미승빌딩은 소유주인 최씨가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 확정을 받으면 국고로 귀속된다. 다만, 알려진 것과 달리 미승빌딩의 값어치가 200억대에 달하진 않는다.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B씨는 “200억원 급매는 터무니없는 뉴스”라면서 “최대 170억원 수준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급매로 130억원에 팔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정씨로선 거취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승빌딩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산이 압류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머물 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그는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달 3일부터 미승빌딩에서 지내왔다. 그동안 정씨가 집밖을 나온 것은 최씨가 수감 중인 서울 남부구치소를 찾았을 때,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향했을 때가 전부다. 건강 문제로 병원을 오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정씨의 외출은 지난 3일이었다. 다섯 번째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 정유라 씨가 칩거 중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미승빌딩 윗층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소미연 기자>

그로부터 9일 뒤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하루 앞둔 11일까지만 해도 미동이 없었던 정씨가 다음날 새벽 5시께 미승빌딩을 나갔다. 이후 그가 등장한 것은 오전 10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정에서다.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조차도 재판 30분 전에야 정씨의 출석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비밀리에 이뤄졌다. 도리어 정씨의 변호인단은 재판이 시작돼서야 알게 됐다. 검찰 측에서 “정씨가 오전 8시경 변호인에게 자의로 출석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정씨가 법정에서 증언 중인 10시23분경 권영광 변호사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낸 것이 유일하다”는 게 변호인 측의 설명이다.

◇ 특검과 변호인의 장외공방, ‘출석 회유’ 진실은?

이경재 변호사는 12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정씨가) 전날 일과시간 이후부터 일체 연락이 없었다. 어떤 경위로 법정에 출석하게 됐는지 정밀하게 그 과정을 파악 중에 있다”면서 “특검이 깨끗하다면, 정씨를 어떻게 데려가서 법정 출석하기 전까지 어디서 뭘 했는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특검 측은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정씨가 이른 아침에 특검에 연락해 ‘고민 끝에 법원에 증인 출석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는 뜻을 밝혔다. 법원까지 이동을 도와달라고 해 도움을 줬을 뿐 불법적인 증인 출석 강요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날 재판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법정에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신 서둘렀다. 아들을 돌봐주고 있는 보모의 근무시간이 오후 2시까지라 점심시간도 생략한 채 증언을 이어갔다. 그는 최씨가 삼성이 사준 말 살시도와 관련 ‘네 것처럼 타면 된다’, ‘삼성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토 달지 말고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사실을 전하며 “삼성이 말세탁을 모를 리 없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4시간 동안 폭탄발언을 던진 뒤 다시 미승빌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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