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를 다루는 공판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졸음을 이기지 못했고, 간신히 졸음을 쫓은 뒤엔 책상 앞에 놓인 책(추정)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 상영 문제는 한때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요 현안이었다.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화가 많이 났고, 관계부처 조윤선 장관은 확산 방지를 지시하기도 했다. 영국의 권위 있는 맨커부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에게 보낼 축전을 두고서도 말이 많았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책을 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축전은 대통령이 아닌 장관 명의로 발송됐다. 배제 대상에 대한 세밀한 조치다. 검찰은 ‘블랙리스트’와 연루된 증인들의 신문 내용을 차례대로 읽어가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 식후에 피할 수 없는 졸음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관심 없는 모습이었다. 피고인석 앞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검찰 측이 발표하는 증인들의 신문 내용을 볼 수 있었지만,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그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심리로 열린 속행공판에서 책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 본 것 마냥 표지 앞뒤를 살피고, 차르륵 소리를 내며 분량을 확인했다. 몇 장을 넘겨보기도 했다. 물론 책이라고 단언할 순 없다. 분명한 건,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고개를 숙여 뭔가를 읽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중력은 오래 가지 못했다. 피곤한 눈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목을 뒤로 젖히거나 좌우로 움직였고, 어깨를 주물렀다. 끝내는 졸았다. 점심식사 이후 공판이 재개된 지 10분도 안돼서 고개가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급기야 변호인 쪽으로 몸이 기울여졌다. 이를 방청석에서 지켜본 지지자들은 수군수군했다. 한 사람이 “대통령이 피곤하셨나보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이고”하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응수하는 식이다. 변호인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졸음을 깨우지 않았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선 지루한 시간이었다. 변호인 측의 반대 입장 발표는 오는 25일로 예정된 만큼 이날은 검찰 측의 증인 신문 내용을 숙지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그 역할은 탄핵심판 때부터 변호를 맡고 있는 유영하 변호사가 대신했다. 실제 유영하 변호사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뢰는 상당해보였다. 공판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한 그가 유일하게 미소를 보낸 사람이 바로 유영하 변호사였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특히 지지자들은 매 공판 때마다 법정 내 자리를 다수 차지하며 응원을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꾸벅꾸벅 졸자 안쓰러운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소미연 기자>

유영하 변호사는 종일 바빴다. 휴정으로 잠시 휴식이 주어진 오전엔 이날 방청인으로 참석한 허원제 전 정무수석, 김규현 전 외교안보수석, 김재수 전 농림식품부 장관에게 공판 내용을 설명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엔 일찍 자리에 착석해 자료를 살펴봤다. 공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틈틈이 무릎담요와 종이컵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챙겼다. 두 사람은 간혹 얼굴을 가까이 하고 얘기를 나눴다. 그때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로 대답했다.

◇ 유영하에 대한 신뢰 ‘탄탄’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판에 집중하지 못했다. 졸음을 쫓은 뒤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얼굴을 감쌌다. 재판부를 등진 채 오른손으로 목을 받치기도 했다. 하품은 왼손으로 가렸다. 법정에서 나설 때는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숙여 벗어 놓은 신발을 신는 듯 보였다. 그는 발가락 부상 이후 구두 대신 샌들을 신고 있다. 전날부턴 그간 입었던 군청색 정장 대신 회색빛 정장으로 바꿔 입었다.

지지자들은 유영하 변호사에게 “고생한다”며 격려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겐 “기운내시라”고 외쳤다. 특히 지지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설 때마다 목례로 존경을 표시했다. 반대로 김세윤 재판장이 법정에 입장할 때 기립을 거부한 지지자도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인사는 하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 (인사를 못하게 되니) 대통령이 이쪽(방청석)을 보지도 않는다”면서 볼멘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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