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문화부 핵심 정책토의에 앞서 '예술인의 기본권 보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문화는 기본권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헌법 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며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떤 권력도 부당하게 기본권을 제약할 권한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극복은 헌법적 관점에서 시작됐다.

구호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로 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30일 정부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방침을 세웠다. 문화계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무너진 정부정책의 신뢰성 회복이 급선무였다. 문화부는 심의 과정 투명화를 위해 정보를 공개하고, 심의참관인·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 문화예술인 기본권 보호에 팔 걷은 문재인 대통령

법률제정에도 앞장선다. 가칭 ‘예술가의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 예술의 자유 침해 및 차별지원 금지 등을 규정하고 구제철차 및 처벌조항까지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인적심사’의 한계를 제도적 장치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히 제도를 정비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문화계는 크게 환영했다. 일견 지극히 상식적인 개선안으로 보임에도 놀라울 정도의 기대감을 보였다. 그간 문화계가 얼마나 법적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문화계블랙리스트' 대책 방안 <문체부 업무보고>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과 달리 문화예술인들은 개별·독립적 활동이 많다. 그래서 부당한 피해를 받았을 때, 노동계처럼 한 목소리로 저항하기가 태생적으로 쉽지 않다. 풍자와 같은 예술활동으로 승화시키는 데 더 익숙하다. 정치적 힘이 빠지다보니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예술인으로서 기본적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 발상의 전환 ‘블랙리스트 대항할 자생력 키운다’

문재인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과거에 대한 ‘반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불공정관행에도 칼을 뽑았다. 문화부는 ▲영화시장 수직계열화 및 스크린 독과점 개선 ▲외주제작사 방송 제작 불공정행위 개선 ▲미술품 유통 관련법 제정 등을 통해 불균형 해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공정한 계약환경을 위해 ‘표준계약서 사용’을 의무화한다. 구두계약 후 실행단계에서 ‘단가 후려치기’ 등의 문화계 ‘갑질’을 잡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법률상담과 소송지원, 시정조치, 조정 등이 일괄 제공된다. 다양성 확대 측면에서 인디게임과 만화, 음악 등 서브컬처에 대한 지원강화도 담겼다. 서브컬처에 대해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된 것은 최초라는 전언이다.

이밖에 문화계에서 요구했던 생활안정 대책도 추진한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 도입 ▲대출 등 금융지원 ▲문화비 소득공제 도입 ▲저소득 예술인 창작준비금(1인당 300만원) ▲유휴시절 활용한 창작공간 조성 등이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기대조차 못했던 ‘발상의 전환’이 담겼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바라봤다. 황진미 씨는 “적폐의 대상들에 대해 단순히 벌을 주겠다는 개념이 아니라 예술인들 자생적으로 (블랙리스트 등에) 저항할 힘을 키워주겠다는 의미”라며 “새로운 세대에게 점점 힘을 발위하게 할 수 있는 주체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으로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특히 “문예진흥기금의 재원을 체육, 복권, 건강증진기금 등에서 전임금을 늘려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것은 예전 문화예술계에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방안”이라며 “(예술인들이) 완전히 비굴해지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것을 남겨두겠다고 한 대목에서 좋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부의 추진계획대로만 진행된다고 해도 예술계 내에서 크게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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