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이 기아를 상대로 9회말에만 7득점을 기록하는 대역전승을 거뒀다.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야구라는 스포츠의 또 다른 묘미는 ‘대역전극’이 규칙상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야구는 시간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 팀의 한 이닝은 아웃카운트 3개로 끝나고, 그렇게 27개의 아웃카운트가 나와야 한 경기가 끝난다.

때로는 한 경기 내내 1득점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론상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빼앗기지 않고 무한대 득점까지 가능하다. 축구는 경기시간을 2분여 남기고 5대0의 스코어를 뒤집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야구는 아웃카운트가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기적을 쓸 수 있다.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등의 말이 있는 이유다.

지난 3일 서울 고척돔에서는 프로야구 ‘대역전극’의 새 역사가 쓰였다. 주인공은 넥센 히어로즈. 조연은 리그 1위 기아 타이거즈가 됐다.

이날 양팀은 외국인 에이스가 나란히 마운드에 올랐다. 넥센 밴 헤켄과 기아 헥터의 맞대결이었다.

기아는 1회초부터 2점을 득점하며 기선을 제압했고, 넥센은 2회말 1점을 따라붙었다. 하지만 기아는 4회초 다시 1점을 도망갔고, 7회초에는 이범호의 홈런 등 3점을 추가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심지어 기아는 9회초에도 1점을 더 추가하며 넥센의 사기를 완전히 꺾었다.

그 사이 기아 헥터는 8이닝 동안 107개의 공을 던져 1실점만 허용하며 호투했다. 9회말 단 1이닝이 남은 가운데, 기아는 7대1로 넥센을 한참 앞서 있었다. 1이닝을 잘 막고 경기를 마칠 경우, 기아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동안 펼쳐진 6경기를 모두 승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헥터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것은 한승혁. 넥센은 4번타자 김하성이 첫 타자로 나왔다. 결과는 볼넷. 다음은 넥센의 ‘만년 유망주’ 장영석. 장역석은 볼카운트 2-2에서 6구째를 받아쳐 큼지막한 2루타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사 2, 3루의 상황에서 한승혁은 다음 타자 고종욱을 상대로 내야땅볼을 이끌어내며 아웃카운트 하나와 1점을 바꿨다.

이제 7대2, 1사 3루의 상황. 베테랑 타자 이택근은 가볍게 안타를 기록하며 장영석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다만, 스코어는 7대3으로 여전히 멀었다.

또 다른 베테랑 타자 채태인을 상대하며 기아는 투수를 교체했다. 한승혁이 아쉬움을 남긴 채 내려갔고, 심동섭이 올라왔다. 그러나 심동섭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 채 채태인을 볼넷으로 내보냈고, 뒤이어 대타로 들어선 김민성에게도 11구 승부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4점차에 1사 만루. 홈런하나면 극적인 동점까지 가능한 상황이 됐다. 그러나 넥센은 신인 이정후가 아쉬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고,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뿐이었다. 이때 주장 서건창이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

기아는 재차 투수를 바꿨다. 하지만 심동섭 대신 올라온 박진태는 초이스 단 한 타자를 상대하며 볼넷만 기록했다.

7대5, 2사 만루. 기아는 9회에만 4번째 투수를 올린다. 베테랑 김진우였다. 그러나 김진우 역시 김하성에게 볼넷을 내주며 밀어내기 1실점을 허용했다. 7대6 또 다시 2사 만루. 그야말로 턱밑까지 쫓아온 넥센은 장영석이 9회에만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장영석은 이날의 영웅이 됐다. 김진우의 2구째를 2타점 적시타로 연결하며 7대8 짜릿한 역전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넥센은 9회말 단 한 이닝에 6점차를 역전시키는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기아는 헥터 1명이 8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도 다른 투수 4명이 9회 한 이닝에 7점을 내주며 패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기아는 한국시리즈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기에 더욱 큰 충격을 준 경기내용이었다.

이날 넥센의 드라마 같은 대역전승은 KBO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9회에 6점차를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야구의 재미와 교훈을 다시 한 번 야구팬들에게 각인시킨 9월 3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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