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생리대 전 성분 조사와 역학조사 실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명희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는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즉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확한 유해물질 전성분 조사와 잘 설계된 철저한 역학조사를 진행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여성단체와 민간기업의 유착의혹으로 생리대 안전성 파문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이를 수수방관하며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앞서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시험 결과를 발표한 여성환경연대는 이 같은 시험결과를 식약처에 전달하고 전수조사 및 제도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생리대 10종에서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과 유럽연합의 생식동성, 피부자극성 물질 등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다는 것이 검출시험 결과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식약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고 논란이 확산된 이후에야 식약처는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독성물질이 검출된 생리대 제품과 업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도 상식 밖의 행보를 보였다.

식약처는 지난달 30일,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를 열고 김만구 강원대 교수팀이 진행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시험’ 결과를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김만구 교수의 실험 결과는 상세한 시험 방법 및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상호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큰 업체·제품명을 비공개 처리했다.

하지만 불과 닷새만에 입장을 바꿨다. 일부 언론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회사와 제품명을 공개하자 부랴부랴 업체명과 제품명을 공개한 것이다. 공개한 업체에는 그동안 논란이 된 깨끗한나라 릴리안 외에도 유한킴벌리, LG유니참, P&G 등이 포함됐다. 사실상 대부분의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셈이다.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식약처는 “국민 불안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공개된 제품들이 실제로 인체에 위해한지 판단은 미뤘다. 식약처 스스로 ‘믿을 수 없다’고 했던 시민단체 자료를 그대로 공개하고도, 유해한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부처가 보인 행보로는 상식 밖이자, 지나치게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식약처가 제품명을 공개하자 소비자 불신은 더 커졌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주부 한모(39) 씨는 “조사 대상 제품 모두 유해물질이 나왔다고 발표해놓고, 유해한지는 모르겠다니… 이걸 쓰라는건지 말라는건지 모르겠다. 너무 무책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과거 식약처는 앞서 ‘치약파동’ 당시에도 CMIT·MIT 성분이 치약에 포함돼도 안전하다고 밝힌 직후 정부합동으로는 해당성분이 함유된 모든 제품에 대해 현황조사에 나선다고 입장을 바꿔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줬다.

최근 ‘살충제 달걀’ 사태에서도 섣불리 전수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후 다시 정정하는 해프닝을 반복했다. 안전하다고 발표했던 농장 계란에서 또다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번 생리대 사태에서도 식약처의 부적절한 대응은 국민의 불안감을 키우고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이 거세다. 여성환경연대가 검증되지 않은 시험 결과를 섣부르게 발표하며 파문에 불을 붙였지만, 이 논란을 정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식약처는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혼란이 커지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급기야 정치권에선 “식약처는 생리대 전수조사에서 손을 떼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치권에선 민관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식약처는 이달 안에 휘발성 유기화합물 10종 조사를 마무리하고 업체와 품목별 휘발성 유기화합물 검출량, 오해 평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나머지 휘발성 유기화합물 76종 조사 결과도 곧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신뢰가 추락해버린 상황에, 식약처의 발표가 이번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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