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2승을 남겨두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야구는 투수놀음이다”라는 말이 있다. 타자들이 듣기엔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이다. 혹자는 호쾌하고 짜릿한 안타와 홈런을 “야구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야구경기에서 투수력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특히, 리그 우승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따내기 위해선 막강한 투수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우승팀 두산 베어스는 4명의 투수가 다승 3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타스틱 4’라 불린 이들 4명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각각 1승씩을 책임지며 4승 전승 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엔 다소 쫓기는 신세가 됐지만, 기아 타이거즈는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막강한 타선은 물론이고, 2명의 에이스 투수를 보유한 덕이다. 기아의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는 나란히 18승을 거두며 다승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관건은 누가 다승 1위로 우뚝 서느냐다. 무엇보다 양현종에게는 국내투수의 자존심이 달려있다.

국내투수가 다승 1위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13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배영수가 14승을 거뒀다. 그마저도 당시 SK 와이번스의 크리스 세든과 공동다승왕이었다. 국내투수가 단독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것은 이보다 1년 앞선 2012년의 장원삼(삼성 라이온즈)이었다.

이후 다승왕은 모두 외국인 용병선수들의 차지였다. 2014년엔 앤디 벤헤켄(넥센 히어로즈)이 20승으로 다승왕에 올랐고, 2015년엔 에릭 해커(NC 다이노스)가 19승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지난해엔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가 역대 용병 한 시즌 최다승 타이인 22승을 거둔 바 있다.

물론 다승왕이 투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좋은 실력을 지니고도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올 시즌 3.04의 평균자책점으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라이언 피어밴드(kt 위즈)와 3.33으로 그를 뒤쫓고 있는 차우찬(LG 트윈스)은 나란히 8승만 거뒀을 뿐이다.

단, 다승왕이 ‘리그 에이스’를 상징한다는 점은 반박할 수 없다. 그동안 다승왕은 거의 대부분 우승팀 또는 우승을 다툰 팀에서 배출됐다. 즉, 다승왕은 자신이 좋은 기록을 달성할 뿐 아니라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에이스 투수의 존재감은 팀을 연패에 빠지지 않게 하고, 다른 선수들을 독려하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따라서 다승왕 타이틀은 그 무게감이 상당하다. 그런 타이틀을 계속해서 외국인 용병선수들에게 내주고 있다는 점은 국내투수들 입장에서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다.

같은 팀 소속으로 다승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헥터 노에시(왼쪽)와 양현종. <뉴시스>

공교롭게도 양현종의 경쟁상대는 같은 팀 외국인 용병선수다. 기아는 21일 현재 9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양현종과 헥터는 각각 2경기 정도씩을 더 소화하게 될 전망이다.

먼저 양현종의 최근 등판은 지난 19일 SK전이었다. 남은 등판 일정은 2~3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먼저 휴식일을 4일만 갖고 오는 24일 한화 이글스 전에 출격한 뒤, 다시 4일 휴식 후 한화를 마주하는 것이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24일 한화를 상대한 뒤 10월 1~3일 kt와의 3연전에 출격하거나, 휴식일을 6일 갖고 LG를 상대한 뒤 kt전에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

한화와 kt는 시즌 막판 고추가루 부대로 떠오르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5위 싸움을 펼칠 LG보단 부담이 덜한 상대다. 어쨌든 양현종은 세 팀 모두 반갑다. 양현종은 올 시즌 한화와의 경기에 2번, kt와의 경기에 3번, LG와의 경기에 2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둔 바 있다.

헥터는 지난 16일이 마지막 등판이었다. 경기일정상 오는 22일 두산, 28일 한화를 상대할 가능성이 높고, 4일 휴식 후 마지막 kt와의 경기에 등판할 여지도 남아있다.

22일 두산전은 올 시즌 우승팀의 향방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일전이다. 헥터의 어깨가 무겁다. 다행히 헥터는 올 시즌 두산을 4번 상대해 3승을 챙겼다. 타선의 도움을 받은 경기도 있었지만, 대체로 두산에게 강한 편이다.

한화와도 4번을 상대했으며 3승 1패의 기록을 남겼다. 다만 가장 최근 한화와의 경기에서 5이닝 10피안타 5실점으로 부진했던 점이 조금 껄끄럽다. 마지막 상대일 가능성이 있는 kt를 상대로는 2경기 모두 승리를 거둔 바 있다.

이처럼 양현종과 헥터의 다승왕 집안싸움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연 양현종은 2013년 이후 첫 국내투수 다승왕, 2012년 이후 첫 국내투수 단독 다승왕이 될 수 있을까. 양현종의 어깨에 또 다른 자존심이 걸려있다.

그리고 하나 더. 양현종은 남은 경기에서 2승을 추가할 경우 20승 고지를 밟게 된다.

최근 몇 년 간 20승의 특별함은 다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니퍼트는 22승을 거뒀고, 2015년엔 해커가 19승, 2014년엔 벤헤켄이 20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외국인 용병투수였다. 가장 최근 20승 고지를 점령한 국내투수는 1999년 정민태(당시 현대 유니콘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려 18년 전 일이다. 역대 20승을 달성한 국내투수는 박철순, 장명부, 이상윤, 최동원, 김시진, 김일융, 선동열, 이상훈, 김현욱, 정민태 뿐이다. 대부분 선수관리 개념이 달랐던 리그 출범 초기에 몰려있다.

양현종이 20승을 달성하며 다승왕 타이틀까지 차지한다면, 그 자체로 한국 프로야구는 2017년을 더 특별하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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