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들이 민자역사 국가귀속 관련 설명회를 지난 21일 연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입점 업체 관계자들이 시위에 나선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서울역과 영등포역은 유동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열차와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오고간다. 서울역은 서울의 한 복판에 위치해있고, 영등포역은 수도권 서남부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교통의 요지는 최고의 상권이다. 누구나 탐낼 만한 이 상권은 오랜 기간 롯데그룹이 쥐고 있었다. 서울역엔 롯데아울렛과 롯데마트, 영등포역엔 롯데백화점괄 롯데시네마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 방을 빼야 할 처지가 됐다. 어느덧 30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점주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가 ‘시정잡배’처럼 장사터를 빼앗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난과 당장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는 직원들의 한탄까지 나온다.

◇ 30년 동안 누린 ‘노른자 상권’, 이제는 돌려줄 때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벌어진 이러한 논란은 정말 ‘국가의 갑질’일까.

우선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이 이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을 알아보자. 여기서 알아야할 것이 ‘민자역사’라는 용어다. 민간자본을 투입해 지은 역사를 의미한다.

정부는 훌륭한 상권인 역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자역사를 추진해오고 있다. 역사를 짓는데 드는 돈을 민간으로부터 끌어오는 대신, 일정 기간 동안 해당 시설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정부입장에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시설의 역사를 지을 수 있고, 동시에 임대 수익을 통해 유지관리 비용 충당도 가능한 방법이다. 또한 역사 주변 상권을 한층 더 활성화 시키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민자역사에 투자하는 기업 입장에선 최고의 상권을 장기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많은 유동인구를 흡수할 수 있고,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민자역사는 전국에 18곳이 있다.

물론 모든 민자역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은 아니다. 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은 곳도 종종 있다. 하지만 서울역과 영등포역은 최고의 민자역사로 꼽힌다. 서울역은 한화가 투자해 롯데마트 등에 재임대했고, 영등포역은 롯데가 투자했다.

단, 민자역사에 투자한 민간자본이 훌륭한 상권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으로 정한 기간이 있다. 30년이다. 무기한으로 해당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할 경우 지나친 특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지금의 논란이 불거졌다.

두 역이 민자역사로 추진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올해로 30년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정부는 해당 시설을 원상회복하거나, 국가로 귀속시키거나, 점용기간을 연장하는 세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역시 법으로 정해진 내용이다.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방안은 국가귀속과 점용기간 연장이었다. 원상회복 시킬 정도로 노후된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법적으로 민자역사에 투자해 해당 시설을 이용한 점용권자는 기본적으로 원상회복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단, 점용권자의 요청이나 국토교통부 장관 직권에 의해 원상회복 대신 국가귀속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이는 30년 전 계약 당시 투자에 나선 기업들도 동의한 내용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계약기간이 끝난 두 민자역사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했다. 결론은 국가귀속이었다.

정부는 권한 밖의 기간까지 임대 계약을 맺은 한화, 롯데 등에 대해 법적 대응 검토도 하고 있다. <뉴시스>

◇ 계약만료 알고도 임대… 무책임 넘어 ‘사기’

이처럼 서울역, 영등포역 민자역사의 국가귀속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특정 기업에게 지나친 특혜를 주지 않기 위한 법적 장치가 때를 맞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결정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만료가 불과 3개월 남은 시점에 결정이 내려졌기에 충분히 나올 만한 지적이다. 다만, 정부는 다소 늦은 결정의 후유증을 고려해 일정 기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또한 입점 상인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소통과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조금 더 서두를 필요가 있었던 것은 맞다. 다만, 지난해 불거진 국정농단 및 탄핵 사태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던 점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민자역사 계약기간 만료에 대한 내용은 2년 전부터 제기됐다. 당시에도 정부는 점용기간 연장보단 국가귀속 쪽에 무게를 싣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해당 기업들의 행태다. 점용기간이 2017년에 끝나고, 연장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알고도 ‘배짱 계약’을 맺었다.

한화는 서울역 롯데마트 및 롯데아울렛과 각각 2024년, 2033년까지 입점계약을 맺고 있다. 권한도 없으면서 임대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이 같은 임대 계약은 영등포역도 마찬가지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 입점한 123개 업체 중 17개 업체가 올해 말을 넘어서까지 임대 계약을 맺고 있다. 롯데의 권한을 벗어난 임대 계약기간은 1년 1개월~4년 2개월에 이른다.

개인 입점 점주는 점용기간이 올해로 끝난다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화나 롯데는 그렇지 않다. 즉, 알고도 권한 밖의 계약을 맺은 셈이다. 이는 무책임을 넘어 사기와 다름없는 행태다.

정부의 유예기간 결정은 입점 업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결과적으로 한화와 롯데는 자신들이 피해를 조장한 입점 업주 뒤에 숨어 유예기간이란 혜택을 받게 됐다.

정부는 한화와 롯데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입점 업주들의 비난과 성토의 방향은 다소 엇나간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갑질보단 기업의 갑질에 더 가까운 사안이다. 조금 늦은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정부는 유예기간이라는 적절한 대책도 함께 내놓았다. 반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배짱으로 버티던 한화와 롯데는 권한 밖의 임대 계약까지 맺는 뻔뻔함을 보였다. 일부 입점 점주들은 이들에게 점용기간을 연장해주라고 요구하지만, 납득할만한 근거는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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