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도입된 김영란법이 시행 1년을 맞는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에 소재한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 모습.<뉴시스>

[시사위크=장민제 기자] 국내 한 기업의 홍보실 소속인 A씨는 지난해부터 시행된 ‘김영란법’ 덕분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예전보다 술자리가 줄어들면서 가족과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A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많이 달라졌다”며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아내는 매번 술에 취해 들어오던 사람이 일찍 들어온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홍보실 관계자 B씨 역시 “소위 ‘좋은 데’ 가자는 요구가 사라졌다”며 “부당한 요구엔 김영란법 핑계로 거절할 수 있게 됐다”고 귀띔했다.

◇ 89.5% 김영란법 효과 있다 vs 정치권 “경기부양 위해 상향해야”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이 어느덧 1년을 맞았다. 많은 우려 속에서 시행됐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더 크다. 한국사회학회가 최근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중 89.5%가 김영란법이 효과 있었다고 답했다. 시행 초기 과도한 규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제기됐지만,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 등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김영란법을 뜯어고칠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는 이유로, 김영란법의 수정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부정부패방지법의 완화로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건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야 할 것 없이 김영란법의 수정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먼저 김정재(농축산물 제외 가공품 제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음식, 선물가액 현실화)과 박준영 국민의당 의원(전통주 제외)등 야당을 중심으로 한 김영란법 개정안이 올해에만 4건 발의됐고, 자유한국당은 김영란법 TF(테스크포스)까지 출범시켰다.

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에서도 김영란법으로 인한 피해를 분석, 올해까지 보완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정방향은 김영란법 시행령 상의 3·5·10(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조항을 상향하거나 배율의 조정, 또는 예외품목을 두자는 것이다. 조금씩 내용은 다르지만, 명분은 ‘침체된 국내소비 및 농촌경제 활성화’로 공통된다. 이달 초 개정안을 발의한 김정재 의원은 제안이유서를 통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법 시행 후 설 식품 선물세트 판매액이 전년 대비 14.4%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22일 공개한 김영란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리얼미터>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경기 및 농어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패방지법을 뜯어고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신동화 참여연대 간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부패방지 제도를 약화시켜 경기부양을 한다는 건 어폐가 있다”며 “(김영란법은) 원칙대로 가야하고, 경제적으로 발생되는 피해는 또 다른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김영란법으로 피해를 본 산업이 있다면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활성화를 모색해야지, 부패방지제도를 약화시켜 경기부양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1.4%가 ‘김영란법의 유지 또는 강화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그 외 ‘국내산 농축산물에 예외규정을 둬야한다’는 의견은 25.6%를 기록했고, 25.3%는 ‘3·5·10을 10·10·5로 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신 간사는 또 3·5·10 조항의 적용범위는 기본적으로 직무관련성이 있는 이들인데, 공직사회 전체에 적용되는 걸로 오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3·5·10 법칙은 직무관련성이 있는 공직자들의 식사, 선물, 경조사비 등에 적용되는 조항이다.

신 간사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김영란법의 완화는 안된다”며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자리가 마련되면 오히려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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