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3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에 오를 정도로 자살문제가 심각하다. 사진은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 써진 글귀 중 하나.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2012년 3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시행된 지 5년 반이 지났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31.7명을 기록했던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비중은 2016년 24.6명까지 낮아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자살문제와 관련된 국제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한결같은 한국의 순위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13년 연속 OECD 1위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80만명 중 78%는 중·저소득국가 국민이다. 반면 1인당 GDP 3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는 한국은 자살률에서만큼은 앙골라·시에라리온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경제력과 삶에 대한 의지의 불균형은 한국사회를 떠받친 고성장의 어두운 뒷면을 드러낸다.

OECD의 행복도지수는 '행복하지 않은 한국인'의 이유를 보여준다. <그래프=시사위크>

◇ 사회가 놓은 끈, 생명줄도 놓게 만든다

지난 9월 충청남도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발표한 도시지역 자살자의 심리부검 결과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설명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발표에 따르면 자살자가 발생하는 제1원인은 정신질환(60.9%)도 경제적 문제(55.0%)도 아닌 ‘사회적 관계 손상‘이었다. 169건의 자살사례 중 86.8%가 단절된 인간관계와 지역사회에 대한 부적응문제를 경험했다.

OECD가 지난 8월 발표한 ‘2016 국가별 행복지수’는 개인의 파편화 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준다. 38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한국의 순위는 28위에 불과했으며, 특히 지역사회와의 교류 및 공공부조 수준을 평가하는 ‘커뮤니티’ 항목에서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OECD 평균기록이 88로 나타난 이 평가항목에서 한국이 받아든 성적표는 뒤에서 두 번째인 75다. ‘필요한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OECD 평균 90%에 달했던 반면 한국의 경우 77%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주변인과의 교류가 적고 의사소통빈도가 낮은 1인 고령가구의 증가현상이 뚜렷한 한국의 인구·가구구조는 문제를 심화시킨다. 한국의 고령화속도는 세계 제일이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가구는 향후 30년간 연평균 9만7,000가구씩 늘어날 전망이다. 사회적 단절이 높은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에 비쳐 보면 이는 곧 ‘자살 고위험군’의 증가를 뜻한다. 자살위험자의 사회적 단결을 야기하지 않는 정신건강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반면 한국의 자살예방대책은 정신질환자를 병동에 격리시키는 입원치료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분석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 정신질환자의 평균 입원일수는 116일이었다. OECD 국가 중 최고기록임은 물론 전체평균인 27.5일과도 큰 차이다. 2009년 자료를 분석한 정부부처는 평균 입원일이 197일이라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사회는 아직 정신건강 서비스에 관대하지 않다. <그래프=시사위크>

◇ 정신건강 경고음 울리는데… “배출구가 부족하다”

지난 2016년 정부 관계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은 한국인의 정신건강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낮은 행복지수·높은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전 국민 4명 중 1명이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한 번 이상 경험한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함께 소개됐다.

그러나 동 자료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아직 미미한 사회적 인식수준도 잘 드러낸다. 정신건강문제를 앓는 인구 중 15%만이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며, 그마저도 최초 치료가 이뤄지기까지 84주일이라는 시간이 소모된다. 지난 2015년 진행된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의 88.4%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이 중 정기적으로 약물치료를 받은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이는 아직까지도 정신과치료에 대한 터부가 한국사회에 뚜렷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신뢰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정신질환이 치료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 자체도 옅다. 무엇보다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혀 취업 등 사회생활에서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우울증·불안증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 정신건강 진료소를 찾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 관심을 제고하겠다”고 밝힌 ‘정신건강 종합대책’에는 우울·자살사고를 주제로 한 공익광고를 제작하고 인식개선 캠페인을 펼치겠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그러나 한정된 재원은 높여 잡은 목표를 무색하게 만든다. 한국이 자살예방정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은 2017년에 99억원, 2018년에는 105억원에 불과하다. 약 6조5,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자살의 사회적 비용은 물론 3,140억원의 일본(2013년 자료)과도 비교하기 힘든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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