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고 돌아온 축구대표팀을 맞은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김호곤 기술위원장.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최근 각 지역별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극적으로 본선 진출에 성공한 나라도 있고, 예상치 못한 탈락으로 충격에 빠진 나라도 있다. 또 늘 그렇듯 이번에도 월드컵을 찾는 나라가 있는가하면, 월드컵 무대를 처음으로 밟게 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어느덧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다.

하지만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공기는 뒤숭숭하기만 하다. 본선 진출의 기쁨은 찾아보기 어렵고, 분노와 실망감만 표출되고 있다. 월드컵 본선을 앞둔 팀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큰 실패를 겪고 돌아온 팀 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축구대표팀을 향해 분노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문제는 간단하다. 달라진 것이 없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수도 있다. 때로는 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쌓여있는 적폐가 훤히 보이는데, 좀처럼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 그것이 문제다.

지금의 축구대표팀 모습은 2014년 6월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축구대표팀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1승도 거두지 못한 월드컵이었다.

여론을 악화시킨 것은 결과와 내용만이 아니었다.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도 관광과 회식을 즐긴 사실이 드러났고, 일부 선수들은 SNS에 태연히 글을 남겼다. 레전드로 추앙받던 홍명보 전 감독 역시 토지거래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귀국한 축구대표팀에게 날아든 것은 ‘엿’이었다. 그만큼 여론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지금의 분위기가 마치 그때와 흡사하다. 경기 결과와 내용이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선수들의 언행 및 태도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행복한 추억을 선사해준 거스 히딩크 감독을 다시 데려오자는 목소리도 높다. 냉정히 말해, 지금의 축구대표팀에 신뢰를 보내고 기대를 거는 국민은 거의 없다.

지난 8일, ‘축구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축구협회 앞에서 정몽규 회장 등 집행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본질은 축구협회의 문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축구협회는 무얼 했으며, 또 어떤 책임을 져 왔느냐다.

다시 시계를 돌려보자.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은 이번 못지않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협회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자기 색깔이 뚜렷한 조광래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최종예선 진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에 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K리그 최강팀 전북을 이끌던 최강희 감독에게 S.O.S를 보냈다. 난색을 표하던 최강희 감독은 최종예선까지만 감독을 맡겠다며 지휘봉을 잡았고, 골득실 1점 차이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을 맡긴 것은 홍명보 감독이었다. 하지만 당시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대표팀을 맡아봤을 뿐 프로팀 감독 경험조차 없었다. 결과적으로 홍명보 감독은 실패했다.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배경엔 우왕좌왕하며 큰 틀을 만들어주지 못한 축구협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똑같다.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의 후임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임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기로 했다. 출발은 좋았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8전 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최종예선부터 삐걱대기 시작했고, 좀처럼 달라지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축구협회는 또 다시 월드컵 지역예선 도중 감독 교체라는 선택을 내렸다.

문제는 그 이후다. 미덥지 못한 감독을 경질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 대안이 전혀 없었다. 결국 또 다시 젊은 국내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신태용 감독이다.

이런 식이라면 제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을 보유해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선수들은 경기장 위에서 혼신을 다해 뛰고, 감독은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축구협회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백년대계를 수립하고, 선수와 감독이 축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축구협회는 그런 역할을 잊은 지 오래다. 한국 축구는 눈에 띄게 퇴보하고 있고, 축구협회는 축구보다 돈과 정치가 더 크게 작용하는 조직이 됐다. 내부비리까지 드러나면서 축구협회는 대표적인 ‘적폐 협회’가 돼버렸다.

앞으로라도 축구협회가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인적쇄신이다. 부회장이나 기술위원장이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수장을 바꿔야 한다. 그저 상징적인 자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축구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안목과 의지, 명망을 갖춘 이가 축구협회를 이끌어야 한다.

지금껏 축구협회 회장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차지해왔다. 축구인 출신은 조중연 전 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 역시 오랜 기간 축구협회에 몸담아온 ‘고인 물’이었고, 퇴임 이후 각종 비리가 포착되기도 했다.

지금의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어떤가. 2013년 축구협회장에 오른 이후 한국 축구가 걸어온 길은 성공의 길이 아닌 실패의 길이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 본인은 FIFA 평의원이 됐고,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기도 했다. 본인의 입신양명은 성공적이었을지 몰라도, 한국 축구는 그렇지 않았다.

과거엔 정치인이나 기업인 출신 축구협회 회장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비인기종목의 경우 기업인의 관심, 즉 자금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축구협회는 이미 예산규모가 크고, 많은 스폰서십이 붙는 인기종목이다. 축구를 잘하면 국민적 인기가 더 높아질 것이고, 스폰서십 체결을 통한 자금 확보도 더 넉넉해질 수 있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을 다시 축구 발전을 위해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적폐청산의 시대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만큼 추락했다. 붉은전사들이 다시 부활해 많은 국민들에게 짜릿한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선 적폐청산이 시급하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발전은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사퇴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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