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의 세대교체 움직임 뒤에는 씁쓸한 이별도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LG 트윈스가 스토브리그 가장 핫한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황재균의 kt 위즈 입단, 강민호의 삼성 라이온즈 이적 등이 있었지만, 가장 큰 충격과 논란을 불러온 것은 LG다.

LG는 정성훈에게 방출을 통보했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병규, 손주인, 유원상, 백창수 등과 이별했다. 이들을 내보내고 데려온 선수는 1993~1996년생 젊은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뚜렷하다. 세대교체를 확실히 이루겠다는 의지다. LG는 올해 레전드 이병규가 은퇴한 바 있고, 젊은 선수들이 대거 기용됐다. 또 시즌이 끝난 뒤엔 양상문 감독이 단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다. LG에 변화의 바람, 아니 변화의 태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프로구단에서 세대교체는 늘 피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영원한 것은 없듯, 노장은 떠나고 새로운 스타가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 역시 중요하다. 세대교체를 정수기 필터 교체하듯, 자동차 타이어 교체하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역시 프로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스토리’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미국의 메이저리그나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등은 오랜 세월 수많은 스토리가 쌓여왔고, 해당 리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레전드는 이러한 스토리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선수는 영원히 뛸 수 없지만, 레전드는 영원히 남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 중계를 보다보면, 관중석에 있는 바비 찰튼 경을 자주 볼 수 있다. 1937년 태어나 1954년 맨유에 입단했고, 1956년 1군에 데뷔해 1973년까지 17시즌 동안 758경기 출전 249골의 기록을 남겼다. 그 시절 함께했던 팬들은 바비 찰튼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그 팬들의 자녀들은 바비 찰튼을 보며 자부심을 얻는다.

비단 엄청난 기록을 남긴 바비 찰튼 만이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건너온 박지성도 맨유의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다. 여전히 레전드 매치에서 맨유 유니폼을 입고 뛰고, 각종 행사에 참석한다.

이러한 레전드의 존재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 뒤를 잇는 선수들에게 큰 자부심이자 롤 모델, 그리고 넘어서야할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다시 LG로 돌아와 보자. LG에 레전드가 있었나. 훌륭한 선수는 많았다. 특히 야생마 이상훈과 유지현, 김재현 등은 1990년대 LG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의 끝은 하나 같이 좋지 못했다.

김재현은 1994년 데뷔 첫해 개막전에서 홈런을 쏘아올리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 해 20-20클럽에 가입하는 등 신인으로서 믿을 수 없는 활약을 펼쳤고, 데뷔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팀의 핵심전력으로 활약을 이어간 김재현은 2002년 고관절 괴사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안타를 기록해 큰 감동을 안겼다.

그런데 시즌을 마친 뒤 대수술을 받은 김재현에게 LG는 “고관절 괴사증에 따른 책임은 모두 본인에게 있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했다. FA우선협상에서는 “두 번째 시즌에 규정타석 및 타율 0.280을 넘지 못할 경우 계약을 다시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반발을 샀다. 결국 김재현은 SK 와이번스로 떠났고, 이후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SK의 레전드로 남았다.

이상훈, 유지현 등도 끝이 아름답지 않긴 마찬가지였고, 이는 LG 암흑기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현재 코치로 돌아와 있지만, 선수로서 LG 유니폼을 입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물론 이번에 LG를 떠난 선수들이 소위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이별의 과정에 있어서는 조금 더 좋은 스토리를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LG팬들은 LG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던 시절 이들의 모습을 보며 늘 어딘가 찜찜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또 하나. 리빌딩,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새롭게 떠오른 선수들은 저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저렇게 멋진 레전드가 돼야지”보단,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더 갖게 되지 않을까. 팀에 헌신했던 선배들이 초라하게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팀에 헌신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좋은 선수를 영입하고,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아름다운 끝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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