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선규 기자] 프로야구 구단들의 신인선수 지명은 늘 흥미롭다. 선수들의 미래가치를 세밀하게 검토한 뒤 지명에 나서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예상보다 성장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기대 이상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선수도 있다는 점은 다행스런 점이다.
2006년 8월,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이 진행됐다. 당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 선수는 바로 기아 타이거즈 양현종이었다. 야수 중에선 불의의 사건으로 미처 꽃을 다 피우지 못한 채 은퇴한 박용근이 전체 3순위로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투수 이웅한(은퇴)을 가장 먼저 불렀고, 2라운드에선 야수 김민성(현 넥센 히어로즈)을 선택했다. 또 투수 박세진(은퇴)에 이어 손광민이란 이름을 불렀다. 이웅한의 계약금은 1억5,000만원이었고, 김민성은 1억원, 박세진과 손광민은 8,0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연봉은 모두 최저연봉인 2,000만원이었다. 이들 4명 외에도 당시 롯데는 3명의 선수를 더 지명해 총 7명의 신인을 품에 안은 바 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롯데가 부른 이름 중 현재 프로야구에 남아있는 이름은 2명, 아니 3명이다. 김민성은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으로 이적한 뒤 핵심선수로 성장했고, 황진수는 롯데에서 오랜 시간 기다림을 가진 끝에 올 시즌 기회를 얻었다. 다른 한 명은 손광민. 이제는 손아섭이다.
부산고 시절 ‘천재 타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손광민이지만, 2차 지명 순위와 계약금 등은 그를 향한 기대의 정도를 확인시켜 준다. 정확히 말해 ‘대어급 신인’은 아니었다.
시작은 화끈했다. 2007년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기회를 얻은 손광민은 결승타를 때려내는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주전 경쟁이 시작됐다. 2008년엔 80경기에 출전, 0.303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09년이다. “야구를 잘하고 싶다”며 이름을 손광민에서 손아섭으로 개명했다.
당장은 효과가 없었다. 이름을 바꾼 뒤 첫 시즌이었던 2009년, 손아섭은 부상 등으로 34경기 출전에 그쳤다. 하지만 이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기 위한 움츠림에 불과했다. 2010년 주전으로 올라선 손아섭은 121경기에서 0.306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후 올 시즌까지 8년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손아섭이다.
또한 손아섭은 빼어난 수비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올 시즌엔 처음으로 20홈런 고지를 밟는 등 파워까지 장착했다. 무엇보다 특유의 악바리 같은 열정과 집중력은 롯데 팬들에게 ‘박정태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올 시즌을 마친 뒤 어느덧 FA자격을 취득하게 된 손아섭은 롯데가 놓치지 말아야할 1순위로 꼽혔다. 동시에 이번 FA시장 야수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과는 롯데 잔류였다. 강민호가 깜짝 이적하며 손아섭을 향한 롯데의 절실함은 더욱 커졌고, 4년 총액 98억원이라는 ‘잭팟’이 터졌다.
계약금 8,000만원과 연봉 2,000만원을 받던 손광민에서 4년 총액 98억원의 슈퍼스타로 거듭난 손아섭. 비록 2006년 신인지명에서는 가장 빛나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10년이 흐른 지금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