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과 한기주. 둘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2005년 6월, 기아 타이거즈는 광주 동성고등학교의 ‘특급 투수’ 한기주를 1차지명 선수로 지목하고, 역대 최대 계약금 10억원을 안겼다. 이 신인계약금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한기주를 향한 기아의 기대와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이듬해인 2006년 8월, 기아는 또 한 명의 동성고 출신 투수를 선택했다. 양현종이었다. 다만, 1차지명이 아닌 2차지명 전체 1순위였다.

여기엔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 당시 기아는 전년도 꼴찌를 기록한 탓에 2차지명 1순번을 쥐고 있었다. 연고지 선수를 지명하는 1차지명에서 양현종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2차지명을 통해 무조건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해에만 2명이 허용된 1차지명에서 기아는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하대에 진학해 대학 최고 투수로 우뚝 선 오준형과 광주 진흥고등학교의 에이스 정영일을 선택했다. 어쨌든 정영일과 양현종 중 정영일을 우선 선택한 셈이었다. 그러나 정영일은 기아를 뿌리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양현종의 계약금은 2억원이었다. 광주 동성고는 물론 광주 동성중학교 선배이기도한 한기주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했다. 당시 함께 주목을 받았던 동갑내기 김광현(SK 와이번스) 역시 1차지명으로 선택돼 계약금 5억원을 받았다.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풋풋했던 고등학생들은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위상은 완전히 역전됐다.

양현종은 올해 선발 2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팀을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MVP와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석권한 양현종이다. 이것만으로도 올 시즌 그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우승팀 기아에 한기주는 없었다. 올 시즌 1군에서 한 하나의 공도 던지지 못한 채 2군에 머물렀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 전념했던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한 시즌이었다.

결국 한기주는 씁쓸함을 남긴 채 유니폼을 갈아입게 됐다. 삼성 라이온즈로의 트레이드가 발표된 것이다. ‘10억 팔’이란 찬사가 늘 따라붙던 한기주는 데뷔 첫 시즌인 2006년 10승을 거뒀고, 2007~2008년엔 마무리로 보직을 옮겨 각각 25개, 26개의 세이브를 올렸다. 특히 2008년엔 46경기, 58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1.71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독한 부상이 그를 괴롭혔고 준수한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한기주는 예전의 위용을 되찾지 못했다.

양현종은 오랜 세월 한기주의 그림자에 가려져있었다. 학창시절에도 그랬고, 프로데뷔 과정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양현종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영웅이자, 리그 최고의 투수로 우뚝 섰다. 반면, 한기주는 자신을 향한 기대에 끝내 부응하지 못한 채 팀을 떠나게 됐다. 둘의 엇갈린 운명은 ‘야구 모른다’는 격언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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