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아파트단지가 아니라 아직 골목들이 있고, 그 골목길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어 좋네. 보도블록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노란색 꽃을 피우는 민들레와 고들빼기도 있고, 콘크리트 옹벽에 생긴 작은 틈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많은 꽃을 피우고 있는 애기똥풀과 제비꽃도 있지.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이런 식물들을 보면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 경이로운 생명력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심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시가 배한봉의 시인의 이야.“암벽 틈에 나무가 자라고
“나는 자유라는 말을 들으면 두렵고 소름끼친다.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학살과 박해와 추방과 억압이 자행됐는가. 나는 직접 봤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서 국가 폭력과 야만성이 정당화 되는 것을 목격했다. 지금 말하는 자유는 시장의 자유, 기업의 자유, 거래의 자유, 경쟁의 자유, 계약의 자유, 투자의 자유, 자기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유, 욕망의 자유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면 거기에 비례해 자유의 가치가 더 고양 되는 게 아니다.
노인이 되면 늙어 섧다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점들도 많네. 무엇보다도 집착할 게 없어 항상 마음이 평안해서 좋아.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이것만은 꼭 이겨야겠다는 호승심도 사라진지 오래됐어. 가장 좋은 건 돈 쓸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정해진 용돈으로 큰 불편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어서 정말 좋아.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지는 않는가 보네. 아직도 부동산이나 주식에 기웃거리는 노인들이 꽤 많으니 말이야. 그러다가 추락하는 지인도 직접 봤어. 아직도 돈이라는 괴물
며칠 전 양평에 있는 소리산 계곡에 꽃구경을 갔다가 백작약의 꽃을 보았네. 카메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야생화를 찍기 시작한 후 15년 만에 보고 싶었던 꽃을 만났으니 얼마나 흥분했겠나. 한참 동안 멍 때리는 사람처럼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네. 집 근처 야산에서 해년마다 만나는 꽃들을 보면 옆에 앉아 예쁘다는 말을 몇 번씩 하는데 백작약 흰색 꽃 앞에서는 그런 말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더군. 그때 생각난 시가 이명윤 시인의 이었어. 50여 년 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안도현 시인의 부터 읽고 시작하세.“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3월 하순과 4월 초순 사이,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 면 소재지 여기저기에 순서대로 피는 꽃들을 노래하고 있는 시일세. 예전에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봄꽃들이 피는 순서가 일정했네. 예를 들어 서울 관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우리 동네
봄이면 꽃을 찾아다니느라 무척 바빠. 올해는 다른 해보다 봄꽃들이 1주일 정도 일찍 피어서 3월에 노루귀,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현호색, 얼레지, 큰괭이밥, 괭이눈 등 많은 꽃들을 보았네. 이 땅에서는 봄에만 만날 수 있는 꽃들이라 눈에 띄면 먼저 이름부터 부르는데, 문제는 그 꽃들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거야. 지난 십여 년 동안 만날 때마다 정답게 불러주던 이름인데도 더듬거릴 때가 많아지고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그럴 때 누가 “이 꽃 이름이 뭐에요?”라고 물으면 더 당황해서
요즘 사진 공부하는 선생님과 함께 대학 친구들의 수제(手製) 사진집을 만들고 있네. 지난 몇 년 동안 함께 여행 다니면서 담았던 친구들의 사진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야. 사진 속 얼굴들을 보면서 나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묻고 또 묻고 있네. 인생이라는 멀고 험한 길을,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 각자 출발점과 종점은 다르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터벅터벅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 사람. 함께 걷다 보면 먼저 지친 이도 있고 중간에 그만 멈추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어제는 봄날처럼 따뜻해서 이른 저녁 식사 후에 동네 산책을 나갔네.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온 향내가 매화 향기 같아서 깜짝 놀랐지. 1월에 있었던 몇 차례 강추위 때문에 3월 중순에나 만날 줄 알았으니 매향에 놀랄 수밖에. 바람에게 길을 묻고 또 물어 찾아갔더니 봄마다 자주 찾아가 놀았던 골목의 고매(古梅)가 꽃을 피우고 있었네. 얼마나 반가운지 “안녕! 왔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 담장 밖으로 뻗친 성근 가지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들과 골목이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왔네. 매창(梅窓)이라는 말이 있는 것
매년 입춘(立春)이 지나면 손꼽아 기다리는 게 있네. 뭐냐고? 매신(梅信)이야. 제주도나 남도에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봄소식 말일세. 올해는 1월에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고 눈이 펑펑 쏟아졌던 날이 많아서 모든 꽃들의 개화 시기가 꽤 늦어질 것 같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지난주부터 제주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거야. 제주지방기상청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제주의 매화 개화는 지난해보다 2일 늦었지만 평년보다는 7일 이른 것이라고 하네. 서울에서도 3월 중순경에는 매화의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마음은 매화 곁에 가 있
몇 년 전 국가가 인정하는 노인이 된 후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읊조리듯 조용조용, 나에게 말하는 아홉 글자가 있네.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大學)』의 2장에 나오는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인데, ‘진실로 하루가 새로웠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뜻이야. 고대 중국의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목욕 그릇에 새겨놓고 날마다 스스로 경계했던 말이라고 하네. 날마다 몸에 낀 더러운 때를 물로 씻듯,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면서 마음까지 깨끗하게 닦아 새롭게 태어나기를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네. 어렸을 적에는 설날이면 예쁜 설빔 입고 일가친척들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는 게 동네 풍습이었지. 하루 종일 이웃 동네에 사는 일가친척 어른들에게까지 세배를 다니다보면 오후에 취하기 일쑤였네. 가는 곳마다 술이 나왔는데 그 종류가 다양했어. 막걸리와 소주가 가장 흔했고, 정종과 청주, 그리고 당시 농촌에서는 매우 귀한 맥주를 내놓는 집도 있었지.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니 아무리 장사라도 오후에는 취할 수밖에. 그래서 지금까지도 명절이 가까워지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술과 관련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고 있네. 나이 들면 시간의 흐름을 자기 나이의 속도로 인지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내 어렸을 적 시간 감각은 거북이 걸음처럼 무척 느리기만 했거든. 시속 10~20km로 달리던 세월의 속도가 70km에 가까워졌으니 간혹 어지러워 비틀거릴 수밖에. 1년이 한순간 같지 않는가? 동네 야산에 찾아온 봄꽃들 보면서 희희낙락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고 새해라니… 내 고향 말로 세월이 참 징하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실감하고 있네.“세월이 참 징해야/ 은
어제 오랜만에 서울에도 눈이 펑펑 내렸네. 함박눈을 맞으며 동네 골목에서 노는 꼬마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내가 보이더군. 눈이 오는 날이면 동무들 손을 잡고 신작로와 골목과 들판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소년. 한겨울에 추운지도 모르고 시골집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 위로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들 바라보다가 그 눈들의 유혹적인 몸놀림에 이끌려 벌떡 일어서서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추던 소년. 아침 일찍 일어나 밤새 장독대에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목을 축인 후, 약간 녹은 눈을 둥글게 뭉쳐 만든 눈사람을 마루에 앉혀 놓고 먼 하늘나라
“그해 여름 요가 수업을 받다가 늘 해오던 아사나 동작이 점점 더 어려워진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 하나의 도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 다리와 등은 예전보다 덜 유연했고, 태양을 향해 몇 차례 절을 하고 나면 금세 숨이 가빠졌다. 그 이후로 내내 시련은 계속되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때면 거의 매달리다시피 난간을 꽉 붙잡아야 했고, 지하철 안에서는 자리를 양보해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욕을 받았다고 여겨야 하는 건지 몰라 나는 주춤거렸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안과 의사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매화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은 국화라고 말하네. 상강과 입동이 지난 지금도 옥상에 올라가면 국화의 탐스러운 꽃들을 볼 수 있으니 맞는 말일세. 오늘 아침 간밤에 내린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는 국화들을 보면서 꽃을 좋아하는 친구들 생각을 했네. 그래서 오늘은 국화 이야기일세.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꽃이네. 국화의 조상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국화에 관한 전설과 관념이 맨 처음 만들어진 곳은 중국일세. 아마 국화의 잎과 꽃에 맺힌
정해진 시간 내에 꼭 끝내야 할 일도 없는데 괜히 마음이 바쁜 날이 있네. 그런 날이면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대다가 아무 것도 못 하고 하루를 보내고 말지. 이제 시간 여유를 갖고 지난 삶을 조용히 뒤돌아볼 나이인데도 왜 마음은 여전히 급하기만 하는지… 이럴 때 일부러 찾아 읽는 시가 정일근 시인의 이네. 치타슬로(Cittaslow)는 이탈리아어로 ‘느리게 사는 도시’라는 뜻이야.“달팽이와 함께 느릿느릿 사는 사람의 마을에/ 개별꽃 곁에 키 작은 서점을 내고 싶다/ 낡은 시집 몇 권이 전부인 백양나무 책장에서/ 당나
시사주간지 은 매년 추석 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사회 신뢰도 조사’를 하고 있네. 올해도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국가기관과 언론 등 여러 분야의 신뢰도를 조사하여 추석 합병호에 발표했더군. 그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신뢰도는 역대 대통령 신뢰도 중 이 잡지가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가장 낮았네. 10점 만점에 3.62점(0~4점 불신, 5점 보통, 6~10점 신뢰)으로 이전까지 가장 낮았던 2016년 8월 말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신뢰도 점수
이번 추석에는 여느 해보다 크고 둥근 보름달이 떴던데 잘 보았는지? 늙으면 명절도 시들해지는가 보네. 어렸을 때는 명절이 마냥 좋았는데 요즘은 설날과 추석에도 별로 흥이 나지 않아. 가슴 떨리는 설렘도 없고. 그래서 올해 추석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냥 담담하게 지냈네. 명절이면 일가친척들 다 모여 북적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자식들만 조용히 다녀간 명절이 너무 한한(閑閑)하기는 했어. 그래도 김완하 시인의 을 읽고 또 읽으며 지금은 잃어버린 옛 고향 풍경과 어렸을 때 만났던 별들을 회상하는 시간을 충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꽤 쌀쌀한 걸 보면 가을이 머지않은 것 같네. 새벽에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는 노인들 복장이 지난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졌어. 짧은 옷차림은 보기 힘들고 긴팔셔츠와 긴바지를 입고 걷는 사람들이 대다수야. 공원 숲속에서 매미들의 힘찬 노랫소리에 맞춰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귀뚜라미와 여치 같은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더군. 세월 참 빠르지?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초가을에 산과 들에서 흔히 보는 꽃들은 대부분 국화과 식물이네. 들국화라고 부르는 식물들이
오는 17일에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성적표가 나왔네.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한국갤럽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25%이고,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6%였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한 명만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야. 3명 중 2명은 부정적이고.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00일 무렵 직무 수행 긍정률은 제13대 노태우 57%, 제14대 김영삼 83%, 제15대 김대중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