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전경련 빌딩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전경련은 설립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모두가 기억하는 그 이유 때문이다. 전경련은 지난해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복판에 있었다.

전경련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주요 기업들로부터 돈을 모아 최순실이 개입된 두 재단에 지원했다. 희대의 정경유착 사건에서 소위 ‘모금책’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특정 극우세력을 지원해 여론호도를 도운 정황도 드러났다.

뜨거운 촛불민심 앞에 청산해야할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전경련은 지난해 12월 15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해체론이 거센 가운데, 회원사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사장단 회의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전경련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할 뿐이었다. 삼성, 현대차, SK, 롯데 등 주요 회원사들이 줄줄이 불참했다. 이후 전경련을 향한 여론을 갈수록 더 악화됐고, 기업들의 탈퇴 러시가 이어졌다.

◇ 조직·위상 축소… 적폐청산 끝?

그로부터 1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한 뒤 구속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순실은 그보다 앞서 구속됐고, 대한민국 최고 재벌 삼성가(家)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금은 구치소에 있다. 그밖에도 많은 이들이 제각기 죗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정권은 교체됐고,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현재도 ‘적폐 청산’이라는 기치 아래 혁신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경련은 어떨까.

우선 거센 해체론에 직면했던 전경련은 지금도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최악의 위기를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끝내 살아남은 것이다.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는 있었다. 전경련은 쇄신안과 함께 ‘한국기업연합회’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전경련이란 간판을 유지 중이다. 이름을 바꾸기 위해선 전경련의 정관변경과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 등의 절차가 필요한데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규모나 역할은 크게 축소됐다. 기존의 7본부 체제의 조직은 1본부 2실 체제로 전환됐고, 인력은 40%가량 줄었다. 주업무도 재계 소통창구 역할 정도만 남게 됐다. 아울러 일부 인력을 현대경제연구원으로 옮겨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강화했다.

대외적 위상도 마찬가지다. 재계의 대표성은 대한상공회의소에 넘겨줬다. 이를 상징하는 사례는 문재인 대통령의 재계 간담회였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두 차례 모두 참석해 재계 총수들을 소개했다. 전경련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경제인단’에도 들지 못했다. 대외적 위상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부금은 아예 없애버렸다.

다만, 여의도에 위치한 고층 빌딩은 여전히 소유 중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빌딩에 상당한 부채가 있어 장기적으로 이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회원사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만약 처분을 한다면 이사회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재로서는 처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경련은 일부 변화를 맞이했지만, 부족함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름도 그대로, 심지어 회장도 그대로다. 부채가 끼어있다고는 하지만 수천억대 빌딩 역시 계속 보유 중이다. 특히 전경련은 국민적 쇄신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지 못했다. 회장은 후임을 찾지 못하는 촌극 끝에 연임됐고, 혁신안 발표는 더뎠다.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이재용 부회장 등과 비교하면 변화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혁신하는 과정에서 국민 분들께 확실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부분이 있고, 내부적으로도 그 부분은 고민이다”라며 “다만 아직 발표한 혁신안 중에도 다 실행하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어 추가적인 혁신안 마련이나 발표 계획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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