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전 대통령이 베트남 분짜와 맥주를 마시는 모습과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꽈베기빵 식사 후 결재하는 모습.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근 서울 번화가에는 ‘분짜’를 전문으로 내세운 베트남 쌀국수 집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청와대 춘추관이 위치한 삼청동에도 하나 생겼다. 소면처럼 얇은 면발을 야채와 함께 소스에 찍어 먹는 게 특징이다. 메밀소바와 비슷하면서도 맛이 다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베트남 쌀국수’가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남베트남에서 소비된다면, 분차는 하노이 등 북베트남에서 주로 먹는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 국민음식이 우리 식당가에 자리 잡은 연원을 살펴보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베트남 순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저녁식사를 위해 유명 요리사 앤소니 부르댕과 함께 ‘분짜 흐엉 리엔’이라는 서민식당을 찾았다. 맥주 한 병과 분짜를 주문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당시 종편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했던 기자는 해당 방송사로부터 관련 내용의 ‘팩트체크’를 부탁받았었다. ‘현지인이 애용하는 식당인지’ ‘메뉴별 가격은 어떠한 지’ ‘하노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떠한 지’ 등 디테일한 내용까지 요청에 포함됐다. 베트남에 지인이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취재부탁을 받으면서도 ‘이게 그렇게 중요한 내용인가’라는 의구심도 일었다.

의문은 취재과정에서 말끔히 풀렸다. 취재결과 해당 식당은 외국인 거주지역이 아닌 현지인 밀집지역에 위치했으며, 일반인들이 자주 찾은 저렴한 대중음식점이었다. 베트남 전역에서 화제였고, 반응도 뜨거웠다고 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나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대중음식점에서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었다고 했을 때 우리가 보일 반응을 상상해보면 정확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베트남 주요인사와의 만찬도 생략한 채, 이른바 ‘쌀국수’ 외교를 한 데는 목적이 있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했던 국가로 민심 저변에는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여전하다고 한다. 마음의 빗장을 열기 위해서는 고위직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서민행보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보다 먼저 베트남을 방문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도 같은 맥락에서 ‘쌀국수’ 외교를 했고, 지금 우리가 쉽게 접하는 쌀국수가 알려진 시초가 됐다. 이를 소개하던 종편도, 출연하던 패널도 미국 지도자들의 ‘쌀국수 외교’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꽈베기빵’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사뭇 다른 듯하다. 중국 고위직들이 조찬모임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밥’했다는 것. 나아가 중국의 한국 홀대론의 주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쌀국수 외교에 대해서도 베트남의 홀대로 ‘혼밥했다’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보도는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언론의 지적대로 ‘혼밥’ 논란은 '자책골'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의 ‘꽈베기빵’ 이벤트는 청와대의 설명대로 오래 전부터 기획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 간 우애·신뢰에 기초한 국가협력’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방침이기 때문이다. 쓰리랑카 대통령의 방한 당시 문 대통령의 조계종 깜짝 방문과 국회 불교모임 의원 초청 등도 마찬가지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문재인 정부가 만약 사드로 인해 곱지 않은 중국민들의 마음을 녹일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비판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 관영언론인 ‘환구시보’는 문 대통령의 마지막 충칭 일정을 1면 기사로 소개하면서 “문 대통령이 중국을 감동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문 대통령의 충칭방문은 일제에 강점당한 역사를 공유한 중국인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북경청년보는 문 대통령의 아침식사 내용을 자세하게 전하며 케찹에 유타오(꽈베기빵)를 찍어먹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적어도 중국민의 입장에서 한국 대통령을 홀대해 ‘혼밥’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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