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해 북한 김정은이 발 빠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투자나 직접적인 채굴 방식이 아니다. 그의 주특기인 해킹부대를 동원했다. 한국 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공격해 코인을 탈취해가는 수법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봄부터 우리 가상화폐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4월과 9월에는 가상화폐 거래소인 야피존과 코인이즈의 계좌를 해킹했다. 6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을 털었다. 3만6,000여명의 회원 정보를 유출해가는 해킹 범죄를 저질렀다. 이를 통해 북한의 해커부대는 모두 76억원에 이르는 비트코인을 훔쳤다.

북한은 수지맞는 장사를 했다. 천정부지로 뛴 비트코인은 현재 가치로 9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해킹으로 빼낸 가상화폐는 실명 확인이 까다롭지 않은 제3세계의 거래소를 찾아 현금화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대북제재 국면이 본격화 하면서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파악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유엔과 국제사회의 경제·군사 압박에 직면한 김정은 체제가 비트코인을 탈출구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측면에서다.

탈취한 개인정보를 대가로 수 십 억원대의 돈을 요구하거나 추가로 거래소를 공격하기 위해 이메일 해킹을 통해 관리자의 계정과 패스워드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는 게 이들을 추적하고 있는 정보통신 전문가들의 말이다. 미모의 국제적 전문 직업군에 있는 여성으로 위장해 거래소 측에 입사지원서나 이력서를 보내 환심을 사는 ‘사이버 마타하리’ 작전까지 구사하고 있어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대북압박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정은의 돈줄을 죄는 게 핵심이다. 대북 정보 당국은 핵 실험이나 미사일 개발, 관련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우대정책 등을 위해 김정은이 막대한 돈이 쓰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다 노동당과 군부 인사에 대한 통치자금과 각종 치적·우상화 선전물 건설에도 만만치 않은 통치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김정은 통치자금 돈줄죄기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김정은 패밀리의 해외 비자금이나 불법자금도 추적 중이라는 사실이 미 재무담당 고위 관리들의 입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김정은이 굴리는 비자금의 구체적인 규모나 비밀계좌 등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김씨 일가의 정권 수립이후 70년이 가깝도록 3대에 걸친 부자세습이 이뤄지면서 일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자금 액수는 천문학적인 규모일 것이란 관측이 가능하다.

최고통치자에게 모든 권력이 쏠려있는 체제 특성상 비자금 조성과 운용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막대한 비자금을 소유한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최고지도자일 것이란 진단도 내놓는다.

지금까지 북한 최고통치자의 개인금고에 대해 가장 구체적인 공개진술을 한 사람은 강성산 전 북한 총리의 사위로 알려진 강명도씨다. 1990년대 중반 한국으로 망명한 강씨는 우리의 청와대에 해당하는 주석궁 직할 외화벌이 회사인 ‘능라888 무역’의 부사장이었다. 강씨는 귀순 직후 우리 정보당국에 “스위스 은행내의 김정일 비밀계좌에는 20억달러 상당의 비자금이 예치돼 있다”고 밝혔다. 이 돈은 김정일 사망 후 고스란히 김정은에게 넘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비자금은 사용 목적에 따라 크게 통치성 자금과 향락성 자금으로 나뉜다. 통치성 자금은 김정은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데 주로 쓰인다.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해 마식령스키장이나 평양 문수물놀이장 등을 짓는 게 대표적이다. 핵심 권력층의 환심을 사기 위한 데 사용하는 액수도 무시 못 한다.

김정일의 경우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뒤 자신의 맘에 드는 예술인이나 당정군의 간부들에게 호화주택이나 수입 가전제품을 집단적으로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군부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군단장급 이상의 핵심 군 장성들에게 신형 벤츠 승용차를 선물한다거나 대동강변에 인민무력부 간부들이 살 수 있는 특별주택을 지어주는 일에 많은 자금을 쏟아 부었다. 향략성 자금의 경우 당정군 간부들과 연회를 열거나 고급 식자재와 술 등을 조달하는데 쓰인다.

북한은 김정은 비자금의 관리를 위해 전담부서까지 두고 있다. 핵심측근으로 짜여진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39호실’이 바로 그 곳이다. 39호실은 비자금 확보와 운용을 위해 대성무역총회사와 같이 수익성이 높은 알토란 기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이를 통해 금은 같은 귀금속은 물론 송이버섯 등 주요 수출품을 독점적으로 관장한다. 또 원활한 자금 조성을 위해 해외에 독자적인 금융기관까지 진출시켜 놓고 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믿었던 중국까지 대북 금융제재와 노동자 파견 금지 조치 등으로 북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올 겨울이 고비가 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대북제재로 내년 3월 이후 북한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연구원 측은 2018년 북한체제 전망에서 “훨씬 강화된 제재규정 외에도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군사적 압박에 따른 북한의 신형 방사포 등 재래식 전력에 대한 투자 증가”를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 9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본격적으로 제재 효과를 나타내는 시기가 6~12개월쯤이라는 점도 이런 관측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김정은에게 매력적인 돈줄이다. 해킹을 통해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최고지도자의 스타일을 구길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금 자신의 컴퓨터로 서울 비트코인 거래소의 시세표를 들여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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