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히드로 공항의 면세점은 때마침 크리스마스 세일을 하고 있었다. 원래 가격을 알 수 없으니, 진짜 세일을 하는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50%나 70%까지 한다고 하고, 시간도 남아 있으니 돌아다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실 수는 없지만 장식장을 빽빽이 채운 스카치위스키를 하나씩 눈여겨 봤다. 아니 눈에 하나씩 차곡차곡 담았다는 표현이 맞다. 몇 시간에 걸친 스카치 공부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제임슨’이라는 아일리쉬 명품 스카치가 있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은데 독특한 맛이 있다. 뭐라고 잘 표현할 수 없는, 굳이 말하자면 ‘아일랜드’의 맛이라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것일까? 여하튼 십여가지나 되는 제임슨 스카치를 바라보다 30%이상 세일한다는 시그너처를 봤다. 계산해보면 면세가가 5만원정도 하는데 그 맛이 너무 부드럽다고만 적혀 있다.

점원을 불러서 물어보고,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검색해도 잘 안나오는 것을 보면 그리 유명하지 않은 상품 같았다. 게다가 세일까지 하는 걸 보면 이제 단종될 수 있는 끝물인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하튼 이런 술은 일단 득템하고 봐야지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묻지마 쇼핑을 하고 말았다. 나중에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박지에서 먹어본 결과, 다른 제임슨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아일랜드 총각 같은 제임슨과 달리 이는 영국과의 투쟁을 기억하는 아일랜드 중년의 신사를 느끼게 할 정도의 세련된 맛이었다. 시바스리걸사에서 나온 로얄살루트 21년의 맛을 훌쩍 뛰어넘는 맛으로 가성비 대비 최고의 맛이었다.

드로이다 숙소 부근의 한 호텔의 야경 모습. <하도겸 칼럼니스트>

오전 안개로 인해 연착되고 결항되는 바람에 히드로 공항의 비행기 출발시간은 오후에 접어들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출발시간이 지연된다고 한 영국인이 전한다. 결국 아일랜드로 떠나는 비행기도 1시간정도 연착되고 밤늦게 더블린 공항에 도착했다. 덕택에 12시간도 전에 먹었던 술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틈틈이 48시간 100도씨를 유지한다는 스탠리병에 지유명차 공전의 히트 보이차 97년 난창강대청전을 담아 와서 마신 것도 술을 깨는데 한몫을 했다. 사실 그리 많이 먹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정신이 아주 말짱한 것 보면 보이차는 숙취해소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나 보다.

아일랜드에서 렌터카를 이용할 때는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기스가 나거나 차에 이상이 생기면 손님들에게 과하게 보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출국 전에 풀커버 종합보험을 들었다. 그런데 현지 렌터카 직원이 계속해서 다른 운전자 보험을 들라고 한다. 안들면 빌려줄 수 없다고 하고 나중에 환불도 가능한 보험이라고 한다. 아울러 시내보다 공항이 기름값이 싸니 가솔린 비용 56유로를 미리 카드로 계산하라고 한다.

더블린 공항에서 손님들을 환영하는 캐롤을 부르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성가대. <하도겸 칼럼니스트>

나중에 알고보니 다 거짓이었다. 가솔린 비용은 시내(44유로)보다 공항이 당연히 더 비쌌다. 결국 시내에서 가득 채우고 와서 미리 낸 기름값을 환불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전자 보험은 환불이 안된다고 한다. 매니저를 불러서 하소연을 해도 소통상의 오해가 있었다고 하며 일부 환불만 해준다고 한다. 그 가운데 알게 된 사실은 운전자 보험가입 역시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었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 시기 직원이 수당을 올리려고 그랬는지 장난을 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통역을 요청해 봤는데 같은 결론이었다. 여하튼 아일랜드는 물론 외국 여행 가는 사람들은 렌터카 할 때 운전자보험 따로 들지 말고 기름도 넣고 반납하면 아무일 없을 듯하다.

※ 이 글은 본인이 특수하게 우연히 경험한 극히 일부분의 느낌을 전한 이야기일 수 있으며, 일반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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