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해 11월 말 서울대학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5년 정치를 하면서 배운 게 있는데, 상대방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제일 두려워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안 대표는 이날로부터 한 달 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 통합을 해야 하는 명분 중 하나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한 당내 사정에 대해서 다른 당에서 저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간섭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정상이 아니다. 결국 전국에 걸쳐 남녀노소 고른 지지를 받는 젊은 개혁정당의 출현이 두려운 것 아니겠나. 더불어민주당은 단단히 뭉친 개혁세력 등장이 두려운 것이고, 자유한국당은 지지율 경쟁에서 밀려 수구세력으로 주변화 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12월27일 기자간담회)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 아닌가 싶다. 다른 당의 통합 움직임에 대해 평가하는 경우를 제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추미애 대표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1월2일 추미애 대표의 ‘야바위’ 발언에 대해)

하지만 양당 내 분위기는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결국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지역은 호남과 영남이 될 텐데 호남에서 통합정당을 뽑겠느냐, 영남에서 통합정당을 뽑겠느냐. 통합 문제는 안철수 유승민이 개인적 유불리를 계산한 결과로 봐야 한다. 다른 당 일에 관심을 줄 이유는 없다”고 했다.

안 대표는 “다른 당에서 저렇게까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비정상”이라고 했지만,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과 관련해 나온 공식적 발언은 거의 전무하다. 추 대표의 ‘야바위’ 발언은 인터뷰 도중 질문에 대한 답변 수준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통합정당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 한국당도 “바른정당이 처음 창당했을 때 지지율이 ‘반짝’ 했었지만 지금은 어떤가”라며 관망하고 있다.

오히려 ‘이상신호’는 내부에서 감지된다. 안 대표는 야권의 차기 지도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에게 뒤졌다. 1일 보도된 세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유 대표가 28.6%로 안 대표(8.9%)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의 통합 작업이 차기 대권을 잡기 위한 안 대표의 포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뼈아픈 결과다.

국민의당 소속 당원들은 물론 지지층도 분열됐다. 전당원투표 결과 통합 찬성률은 74%로 나타났지만, 투표율이 낮아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초대 국민의당보좌진협의회 회장을 지낸 박도은 보좌관은 “우리 안의 작은 갈등도 해결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극복할지 걱정이 앞선다”며 사퇴했다. 통합 찬성파인 김관영 의원 보좌업무도 내려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안 대표는 서울대 강연에서 “제가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서로 싸워 이기는 자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정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서로 싸워 누가 쓰러지더라도 심판은 국민이다. 국민이 보고 있다가 쓰러진 사람 손잡고 일으켜주면 그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국민의 선택에 승패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안 대표의 말처럼 국민의당의 ‘손을 잡아줬던’ 국민은 바른정당의 통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안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만든 국민의당은 4·13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의당 승리의 기반은 물론 호남이었다. 현재 호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대다수의 의원들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호남지역에서의 국민의당 지지율은 매주 사상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는 안 대표를 바라보며 제3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라는 것은 본인이 결단하고 선택한 것이고 결과를 본인이 수용해야 한다. 저는 그런 정치인들이 받는 상처보다도 국민들이 받는 상처, 이런 걸 우리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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