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은진 기자]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방남했다. 1박2일 동안 강릉과 서울을 들러 공연장을 둘러보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현 단장의 이번 방문은 그야말로 ‘현송월 신드롬’이었다. 현 단장의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 손에 든 가방과 그의 ‘핏’까지 입방아에 올랐다. ‘현송월’이라는 이름 세 자는 내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머물렀다.

현 단장이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각 언론사가 가장 먼저 내보낸 것은 현 단장의 옷차림이었다.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을 비롯한 북한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2일 오후 공연장 점검을 위해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으로 들어서며 시민의 '환영합니다'라는 말에 손을 흔들며 화답한 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뉴시스>

“진한 군청색 롱 코트는 최근 세계 트렌드에 맞는 오버사이즈 핏이다. 허리선을 들이지 않은 실루엣에 과한 장식 없는 디자인이다. 반드르르한 소재는 고가인 라마나 캐시미어로 보인다. 현 단장은 코트 안에 무릎 길이의 H 라인 스커트를 입고 베이지색 불투명 스타킹을 신었다. 보온 기능에 신경 쓴 듯한 스타킹의 소재와 색은 다소 나이 들어 보였다. (중략) 한국 유행과 가장 엇갈린 건 헤어스타일이다. 이른바 ‘1 대 9 아재 스타일’로 만진 앞머리는 한국에선 유행이 지났다.” <한국일보>

“머리는 지난번처럼 2:8 가르마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왔다. 앞머리를 살짝 부풀려 오른쪽으로 모아서 고정해 내리는 헤어스타일이다.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머리는 집게핀으로 고정했다. 지난 15일엔 꽃무늬 집게핀이었지만 이날은 큐빅이 알알이 박힌 것으로 바꿔 착용했다.” <중앙일보>

“일각에서는 (현 단장의) 일부 아이템이 최근 패션 트렌드에 다소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Y자 형태로 길게 늘어뜨린 목도리나 살색(살구색) 스타킹, 반으로 묶은 헤어스타일 등이 대표적이다.” <매일경제>

이 같은 주요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지자 SNS 상에서 비판도 거셌다. 한 누리꾼은 “언론사들이 패션잡지냐? 여자만 나타나면 패션분석 하느라 난리네. 박근혜에 아방카에 김정숙에 이제는 현송월까지”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의 미디어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여성을 일관된 방식으로 소비해왔다. 한 나라에서 가장 센 권력을 쥐고 있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그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 ‘패션’으로 1면에 오르는 일이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수첩공주’ ‘여왕 패션’ 등 그의 생물학적 성을 붙여 비아냥댔다.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최순실 씨 역시 그의 범죄 혐의로 비판받기 보다는 ‘아줌마’로 불리며 비하의 대상이 됐다. 최 씨의 딸인 정유라 씨는 부정입학보다도 ‘성형’ 여부가 더 이슈였다. 지금껏 그 대상이 ‘남성’일 때엔 벌어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국내 언론들의 ‘현송월 신드롬’도 위에 제시한 사례들과 다르지 않다. 현 단장이 ‘미지의 세계’인 북한에서 각종 가십과 ‘찌라시’ 같은 추측성 보도의 중심인물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부각된 것 뿐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 파견되는 북측 응원단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소비될까 우려스럽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파견됐던 북측 응원단은 현재까지도 ‘미녀응원단’으로 불린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이들이 전부 남성이었어도 우리는 ‘미남응원단’이라는 딱지를 붙였을까? 시대착오적인 ‘미인계’를 이용하려는 북한의 후진성도 비판해야 할 부분이지만, 이에 그대로 동요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올림픽 자체보다 그 경기에 초대된 응원단이 더 화제가 되는 것은 누가 봐도 기형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강원도를 방문해 최문순 강원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그때(2002년) 북한 응원단이 완전 자연미인이라고 했는데 북한에서도 성형수술도 하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했다. 최 지사는 “이번에도 미녀응원단을 보내달라고 했다”라며 화답했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으로 평창 올림픽을 지켜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평창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여당의 의도가 ‘미녀응원단’이나 ‘현송월의 여우 목도리’에 묻히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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