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23일 가상화폐 규제계획을 발표하는 금융당국 관계자들. 아래는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연 '한국 암호화폐투자 시민연합'.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정부가 새 가상화폐 대책을 발표했다. 가상화폐를 제도권 내로 편입할 것인가, 혹은 허점 많은 투기상품으로 규정할 것인가라는 기로 속에서 정부는 우선 거래의 투명성을 강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아직까지는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통용될 수 있는 조치다.

◇ 30일부터 거래실명제 시행… “거래소 제도화 조치 아니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국세청 등 정부부처가 작년 말 발표한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에는 가상화폐 거래의 실명제를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겼다. 가상계좌의 신규발급을 전면 중단하고, 기존 이용자의 가상계좌를 일반계좌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 예고됐다. 불건전거래소의 경우 금융서비스를 중단해 퇴출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위 조치들을 모두 1월 중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며,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정책기조 하에 가상화폐 거래소의 폐쇄도 동원 가능한 수단이라고 명시했다. 지난 11일에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가 시장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청와대가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3일 위와 같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발표했다. 거래소의 거래은행과 동일한 은행계좌를 보유했을 때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허용한 것이 골자다. 30일부터 시행되는 이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물론 거래실명제다. 금융당국은 “본인확인을 통해 은행이 자금세탁방지의무를 준수하고 이용자를 식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으며, 향후 과세방안이 확정될 경우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가상화폐 거래소를 제도화하기 위한 조치는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뜨거운 감자’였던 가상화폐 거래 과세 문제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 그동안 가상화폐는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서도 비껴서있었다. 다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거래소가 올린 수익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할 계획이며, 일각에서는 가상화폐를 파생상품과 같은 기준선상에 두고 관련 거래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 ‘가상화폐 대란’에 세계도 분열… 거래 금지 vs 법정가상화폐 발행

비트코인을 위시한 가상화폐의 비상을 대하는 경제주체들의 반응은 그 입장에 따라 판이하다. 민간 투자자들이 열광하고, 기업계가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정부와 중앙은행이 단속에 나서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금융시장이 발전한 해외 주요국에서도 관측되는 현상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가상화폐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데는 세금탈취와 자금세탁에 대한 우려 뿐 아니라 ‘주인 없는 화폐’에 대한 경계심도 크게 작용한다.

중국 규제당국은 작년 말 가상화폐 거래소를 일괄적으로 폐쇄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사태를 해결하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블룸버그는 지난 15일(현지시각) 기사에서 현지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거래소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 새 목표물이다. 여기에 따르면 당국은 관련 사이트에 대한 국내 인터넷 접근경로를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아직까지 가상화폐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러나 북유럽의 유명 자산운용사 ‘노디어’가 직원들의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지난주에는 브루노 르 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올해 말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 독일과 함께 가상화폐 규제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는 등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산발적으로 규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중앙은행의 레이먼드 프렌켄 대변인은 “노디어처럼 자체 규제에 나서는 기업들이 많아진다면 유럽중앙은행도 조만간 명확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중앙기관이 직접 가상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나선 나라들도 있다. 스웨덴중앙은행은 지난 16년 말 가상화폐 ‘E-크로나’를 발행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유럽지역매체 ‘더 로컬’은 15일(현지시각)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수 년 내 스웨덴이 ‘법정가상화폐’를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웨덴은 현금결제비중이 15% 가량(2016년 기준)으로 매우 낮으며, 스웨덴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거래의 전자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는 중이다.

한편 베네수엘라 정부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새 가상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국영석유기업 PDVSA가 파산 기로에 놓이고, 미국이 마두로 정권에 대한 금융압박을 강화하면서 심각해진 금융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이 가상화폐는 ‘페트로’라는 이름처럼 베네수엘라가 보유한 2,670억달러어치 석유에 의해 가치가 담보됐다. 그러나 발행국인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불확실성이 너무 높아 ‘페트로’의 가치는 높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유형자산으로 가상화폐를 담보하는 것은 발행인과 블록체인 기술 양자를 모두 믿지 못하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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