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정현. 그의 팔 소매엔 삼성이 새겨져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캡틴, 보고있나?”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스포츠스타 정현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16강 상대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카메라에 적은 메시지다. 신세대다운 정현의 이러한 행동은 큰 화제를 모았다.

정현의 메시지는 스승인 김일순 감독을 향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과거 삼성증권 테니스단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두 사람 외에도 윤용일 코치와 여러 선수들이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1992년 삼성물산 소속으로 출발했던 삼성증권 테니스단은 비인기종목이자 세계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한국 테니스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 정현에 앞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이형택, 여성 테니스선수 전미라 등도 삼성증권 소속이었다.

하지만 2015년 3월 팀이 해체되면서 이들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은 그룹 차원의 스포츠단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다. 인기 프로스포츠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도 줄이는 마당에, 테니스단 하나 없애는 것은 큰일도 아니었다.

다만, 삼성증권은 ‘유망주’ 정현에 대한 지원은 계속 이어갔다. 장차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팀은 해체됐지만, 정현은 삼성증권 후원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현은 카메라에 적은 메시지와 관련해 “과거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팀 해체 당시, 언젠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특별한 세리모니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기쁨과 의리, 그리고 아쉬움이 담긴 세리모니였다.

정현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큰 주목을 받으면서, 그를 후원해온 삼성증권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성증권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으레 하기 마련인 공치사는커녕, 주목받는 것이 불편한 기색마저 느껴진다.

여기엔 다소 씁쓸한 의혹이 얽혀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다. 삼성증권이 테니스단을 해체한 시기는 삼성이 최순실·정유라를 적극 지원한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 최순실에게 건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테니스선수들을 희생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일각에선 오는 3월 후원계약이 만료되는 삼성증권과 정현이 재계약을 맺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스포츠 관련 지원이 ‘뇌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삼성이 ‘무언의 항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비인기종목에 대한 지원과 뇌물성 지원은 분명 다른 문제다. 전자는 조 단위 이익을 내는 국내 최대 기업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해당한다. 부정한 목적으로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특정인에게 뇌물성 지원을 건네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제2, 제3의 정현이 과정에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지, 권력실세를 움직여 특혜를 얻기 위해 스포츠 지원으로 위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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