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단 간 이견 여전해… "영국에 경제적 손해" 보고서에 재투표 요구도

브렉시트 협상이 최종기한까지 14개월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진은 작년 말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에 참석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가 시작된 지 19개월이 지났다. 양자의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브렉시트 협상도 최종기한까지 1년 남짓만을 남겨두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무역 이슈들을 다루는 본 협상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시작되기 전이지만 벌써부터 각계에서 다양한 잡음이 일고 있다.

◇ 다시 마찰 빚은 협상단

왼쪽은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 장관. 오른쪽은 미첼 바니에르 유럽연합 브렉시트 협상대표. <뉴시스/신화>

당초 브렉시트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은 영국 내 거주중인 유럽연합 시민들의 거취 문제와 아일랜드-영국령 북아일랜드의 교류 문제 등이었다. 해당 이슈들이 작년 말부터 어느 정도 합의의 실마리를 잡아가던 가운데, 최근 양측 대표가 서로 다른 협상조건을 내걸고 나서면서 논쟁의 불씨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미첼 바니에르 유럽연합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29일(현지시각) 다음과 같은 협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영국이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권한을 유지하는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협상이 종료되는 19년 3월부터 2020년 말까지로 설정할 것, 영국은 유럽연합의 중추적 의결행위에 참여할 수 없으며 전환기간까지 모든 EU의 법과 규제에 따라야 한다는 것 등이다.

반면 영국의 브렉시트 장관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협상 기간 중 새로 제정되는 유럽연합의 모든 법을 거부할 권리를 원한다”고 밝힌 상태다. 데이비스 장관은 “유럽연합이 영국에 불리한 법을 통과시킬 경우 이를 방어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전환기간 또한 유럽연합의 방침보다 3개월 더 요구하는 중이다.

◇ 브렉시트는 영국에게 ‘손해 보는 장사’인가

미국 언론사 ‘버즈피드’는 30일(현지시각) “브렉시트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영국 정부의 미공개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브렉시트 협상이 전개되는 방향에 따라 영국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분석한 결과가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버즈피드가 보도한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브렉시트 협상이 결렬되고, 영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자유무역규칙을 따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때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향후 15년간 8% 감소하게 된다. 영국이 유럽경제지역(EEA)의 일원으로서 단일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는 ‘소프트 브렉시트’ 시나리오에서도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2% 하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 보고서가 밝힌 ‘브렉시트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거의 모든 산업들’의 목록에는 화학·섬유·식품·제조업·소매업 등이 포함된다.

산업계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금융허브인 런던도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떨어져나갈 경우 런던이 유럽 금융시장에 대해 이전과 같은 접근성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각) 열린 영·프 정상회담에서 “(브렉시트 성사 시) 런던 금융가에 대한 특혜는 없을 것”이라며 못을 박기도 했다. 주요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사무실을 런던에서 파리‧브뤼셀‧암스테르담 등으로 옮기는 ‘런던 엑소더스’가 우려되는 이유다.

한편 블룸버그는 “영국은 브렉시트로 인해 높은 ‘블랙아웃(대정전)’ 위험을 안게 될 것이다”며 에너지리스크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브렉시트로 유럽에서 수입하는 에너지자원들에 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영국은 기후재난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 등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유럽연합위원회 구성원의 말을 전했다.

◇ 재투표, 가능할까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영국 시위자의 모습. <뉴시스/신화>

이처럼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을 겪고, 경제적으로도 불이익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영국 내 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지었던 지난 2016년 6월의 국민투표가 ‘패닉 보트’였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중이다.

최근 들어 급격히 좁아진 테레사 메이 총리의 입지는 영국 지도부의 노선변경을 기대해볼 수 있는 요소다.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해온 메이 총리는 작년 봄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며 조기총선을 요구했으나, 6월 열린 조기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하는데 실패하면서 역효과만 낳았다. 행정부 내에서도 ‘메이 총리 반대파’인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과 앰버 러드 내무장관이 연임되는 등 장악력이 약화된 모양새다. 해먼드 장관은 지난 26일 막을 내린 다보스 포럼에서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관계가 아주 온건한 수준에서만 변하길 원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소프트 브렉시트’를 넘어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재투표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브렉시트 사태를 ‘국가적 비극’이라고 부르고 있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반면 브렉시트 찬성파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전 대표는 “유럽연합 잔류론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2차 국민투표에 찬성하고 있다. 재투표를 하더라도 브렉시트 찬성파가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셈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이 26일(현지시각) 공개한 브렉시트 재투표 설문조사 결과는 패라지 전 대표의 믿음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가디언과 ICM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51%가 유럽연합 잔류에 찬성했으며 탈퇴를 택한 비율은 49%였다. 52대 48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던 16년 6월의 국민투표와 비교해보면 적게나마 잔류 쪽으로 표가 이동한 모습이다. 다만 가디언은 “16년 국민투표 전에도 이번과 유사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며 해석에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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