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에 출석해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트럼프 대통령.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연두교서 발표에 나섰다. 미국 대통령이 연초마다 의회와 국민 앞에서 국정 청사진을 발표하는 연두교서는 정부의 정책방향을 가늠하는 잣대 역할을 맡는다. 한국시각 31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연설은 평소보다 다소 긴 1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 ‘핵심 경제정책’ 인프라투자, 예산규모는 1조5,000억달러… 실행 가능성은 의문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장이 공언했던 대로 경제 분야의 핵심은 인프라 투자였다. 감세정책의 성공을 한껏 홍보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자신의 또 다른 대선공약이었던 인프라 투자를 1조5,000억달러 규모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수치는 지난 몇 주간 1조달러와 1조7,000억달러 사이에서 다양하게 점쳐지던 중이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정말 이 투자구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예산 마련은 언제쯤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이미 재원마련 방안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공화당의 몇몇 인사들도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알 카르데나스 전 미국보수주의연합 의장은 연두교서 발표 직전 행정부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감세안을 이제 막 통과시켰다는 것, 푸에르토리코·플로리다·텍사스의 허리케인 피해를 복구하는데 2,000억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인프라 투자계획안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시장의 기대 또한 다소 옅어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인프라투자와 관련된 상장기업들의 S&P500 주가지수는 빠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기대감이 꺾인 것은 작년 4월께부터다. 감세와 이민법, 건강보험 등 보다 시급한 현안들이 쉽사리 매듭지어지지 못하면서 투자계획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영향이다. 현재 관련기업들의 주가는 작년 4월에 비해 약 8% 가량 떨어져 있다.

31일(한국시각) 연두교서 발표에서 나왔던 주요 발언들. <그래픽=시사위크>

◇ 양당 통합에는 실패

트럼프 행정부는 발표 전부터 ‘미국 사회의 분열’이라는 프레임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백악관의 주요 각료들은 연두교서의 내용을 묻는 질문에 “통합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강조하면서 갈등의 소지를 없애려 노력했다. 그러나 연두교서 발표 후 BBC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모든 주제들이 두 정당의 분열을 증명했다”고 단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대부분을 자신의 왼편에 앉은 공화당원들에게 몸을 기울인 상태로 진행했으며, 이따금 몸을 돌려 민주당원들의 호응을 유도했지만 특별한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TV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시종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지난 1년은 역사상 미국 내 유색인종 실업률이 가장 낮았던 한 해”라고 선전했을 때조차 민주당 소속 아시아‧아프리카계 의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적극적인 동의의 뜻을 표했을 때는 그가 미국의 높은 의료비를 낮추겠다고 공언했을 때와 더 많은 직업학교를 건설하겠다고 밝혔을 때뿐이었다.

◇ 평범했던 대북비난 수위… 국내경제 영향은

연설이 시작되기 전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고 심각한 방식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는 소식통의 발언을 보도했다. 표현 수위가 ‘눈이 번쩍 뜨일 수준’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연두교서에 포함된 대북 경고메세지의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구체적인 제재조치나 행동방침이 발표되지 않은 것은 물론 ‘화염과 분노’같은 강렬한 표현도 없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양친과 탈북자 지성호씨를 초청해 그들의 사연을 일일이 소개하는, 보다 감성적인 방식을 택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환율이다. 북한리스크는 항상 원화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당초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발언을 쏟아낼 경우 현재 관측되고 있는 원화 강세현상(달러 대비)이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지만, 반대 결과가 나타나면서 오히려 환율 하락세가 가속화됐다. 연두교서 발표 전 1,073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067원까지 낮아진 상태로 장을 마감했다.

한편 주식시장은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전일 2,567.74로 마무리됐던 코스피는 행사가 마무리된 오후 1시경(한국시각) 2,594.12까지 1% 이상 상승했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언급이 자제된 가운데 북한 리스크도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영향이다. 다만 그 이후 연두교서에 대한 부정적 분석들이 발표되고, 인프라투자에 대한 기대열기도 다소 가라앉으면서 코스피도 어제와 유사한 2,566.46까지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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