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다. 다만 보이는 것은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에 따른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런지도 모른다.

신사임당은 초충도에 자연뿐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미물까지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생태를 그려 넣었다. 이름 모를 한 송이의 들꽃과 한 마리 또는 한 쌍의 나비를 통하여 대자연의 신비로움과 창조주의 무한한 조화를 스승으로 삼아 인간이 한 없이 초라한 존재이며, 나아가 인생의 덧없음까지 담아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송현미 작가. 그녀의 초충도 역시 자연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다. 자연이란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서 성장하며, 소멸하는 시간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자연에 묻은 또는 묻힌 시간의 흔적은 우리가 그것을 느낌과 동시에 이미 과거가 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앞에 있기에 현재가 된다. 미래 역시 계속 다가온다. 자연은 바로 그러한 시간들의 중층적인 쌓임이며,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다층구조이기도 하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았다고 해도 자연은 작가의 사유와 경험 등의 욕심이 들어간 ‘유위자연’이 된다. 그런 자연을 그린 그림 속에는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다 녹아있다. 그러므로 자연은 ‘순환적 질서의 조화’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사유의 공간이며 유희적 공간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송현미 작가의 새 개인전 ‘Beyond Times’가 오는 22일(목)부터 28일(수)까지 한전갤러리 1층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사진은 송현미 작가 작품.

작가에게 자연은 단순한 대상이나 현상이 아니라 ‘과거라는 시간이 쌓이고’ ‘현재라는 느낌’과 그리고 인간이기에 그려볼 수 있는 ‘미래가 함께 어우러진’ <시간의 축적>이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송현미 작가의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형식은 차용했으나 이미 신사임당의 그림에 담긴 시간을 아득히 초월한 미래, 즉 현재에 있다. 그리고 초충도 가운데 등장하는 나비는 화자(話者)를 통한 미래에 대한 꿈을 암시한다.

어느 작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송현미 작가 역시 그녀가 그린 ‘풀’이 어떤 누군가 그린 풀보다 더 아름답기를 원한다. 그러면 그 아름다움은 어떤 기준에서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을 <자연의 거리>라고 한다면, <자연의 거리>란 5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조선의 <초충도>를 잇고, 품고, 열었음을 의미한다.

작가가 그리는 <초충도>는 낮은 곳을 지향한다. 어쩌면 뒤돌아봄이 가장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두 가장 순수했던 시절, 누구나 가장 평등했던 순간으로 회귀한다는 의미이다. 나비가 되어 긴 세월들을 넘어 <자연의 거리>를 더 아름답게 잇기 위해 하루하루를 내려놓기 위한 치열함의 정진으로 이끌고 있다.

송현미 작가의 새 개인전 ‘Beyond Times’가 오는 22일(목)부터 28일(수)까지 한전갤러리 1층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관람객 역시 나비가 되어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보는 기회를 꼭 가져보기 바란다. 물론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림 속에서 반드시 다시 나와줘야 한다는 약속은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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