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 나왔다. 미국의 통상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된 외국 제품의 수입을 긴급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법안은 ‘손해 보는 무역은 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관세 부과와 수입물량 제한, 긴급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라는 칼자루를 쥐게 된 미국이 국제무역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 특별관리대상 포함된 한국

미국 상무부는 16일(현지시각) 일부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보고서에서 위 제품들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수입제한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미국이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이며, 그 액수는 수출액보다 네 배나 많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8년 이후 미국 내 철강 산업의 고용인구가 35% 감소했다는 점과 중국이 세계 최대의 철강 생산·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입지가 그만큼 약해졌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거론됐다. 미국이 그동안 철강 무역에서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왔다고 주장한 셈이다.

상무부가 백악관에 요청한 것은 다음 세 가지 권고사항 중 하나를 이행하는 것이다. 모든 수입산 철강에 대해 최소 24%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국가별 철강 수입량 상한을 17년의 63%로 제한하거나, 12개 국가에 대해 53%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여타 국가들보다 더 특별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이 12개국에는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과 함께 한국도 포함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와 의회, 관련업계에 대한 외부접촉 노력을 경주하는 한편 시나리오별 피해 최소화 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의 요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오는 4월 11일까지 결정해야 한다.

◇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나

상무부의 이번 무역법 232조 조치는 그 모호한 적용기준 때문에 일관성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미국의 철강수입 중 가장 많은 비중(16%)을 차지하는 캐나다는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일본(5%)도 제외된 반면 인도(2%)는 포함됐다. 대미 철강수출 상위국가들 중 이번 관세 칼날을 피한 것은 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국가들과 일본‧대만‧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들이었다.

반면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임에도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안 그래도 작년 11월 백악관이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하면서 대 미국 무역전선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단순히 한국과 미국의 무역불균형 때문에 관세가 부과됐다고 보기엔 일본과 멕시코가 제외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무역제재에 한국이 휘말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무부는 철강과 알루미늄 양면에서 중국을 고관세 대상국으로 지정하며 “중국의 월 평균 철 생산량은 미국의 1년 생산량과 맞먹는다”고 밝혔다. 중국산 제품의 물량공세에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 직접적으로 수출되는 중국산 철강 자체는 그리 많지 않다. 중국의 2017년 대 미국 철강 수출량은 지난 2011년에 비해 31% 감소했으며(한국 42% 증가) 순위로도 전체 11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간접 유입되는 중국산 철강의 물량은 상당하다는 것이 상무부의 시각이다.

미국은 2월 15일 기준 169건의 안티덤핑과 상계관세를 발효했으며, 이 중 29건이 중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조사도 25건에 달한다. 여기에 최근 잇따라 철강 산업에 대한 무역규제를 발표하며 ‘중국산 수입품 옥죄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당국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다면 중국도 가만있지 않겠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서, 두 무역대국의 갈등은 더 심화될 듯하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