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폭탄에 세계 주요국이 다양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강경파에 속하는 유럽연합의 장 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지 나흘이 지났다. 국제 무역전쟁의 신호탄이라고 불릴 정도로 민감한 이슈인 만큼 세계 각지의 반응도 뜨겁다. 유럽연합과 중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반면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남은 선택지들의 손익을 저울질하는 중이다.

◇ 리바이스 vs 벤츠, 강철 vs 콩

그동안 유럽연합은 자유무역의 상호성을 끊임없이 피력해왔지만, 미국이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자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우리 역시 바보짓을 할 수 있다”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리바이스 청바지, 버번위스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융커 위원장이 언급한 제품들은 모두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인기상품일 뿐 아니라 20세기 미국산업의 황금기와 자유로운 이미지를 상징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규제대상을 특정했다기보다는 미국 산업계 전체에 경고장을 날렸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트럼프 대통령도 가만있지 않았다. 3일 트위터를 통해 “만약 유럽연합이 현지 미국 기업들에게 부과하고 있는 막대한 관세를 더 올리길 원한다면, 우리는 미국에 자유롭게 수입되고 있는 그들의 자동차에 세금을 물릴 것이다”고 압박했다.

유럽연합에는 자동차산업을 걸고넘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할 국가들이 많다. BMW와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등 세계 유수의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자동차는 단일품목 기준 독일의 최대수출품(11%·1,500억달러, 2016년 기준)이며, 이 중 15% 가량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웨덴 또한 각각 자동차 수출액의 27%와 21%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유럽연합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와 가장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온 중국도 보복관세를 준비하고 있다. 싱가폴 최대 일간지 ‘더 스테이트 타임즈’는 미국 농산품이 주 타깃이며, 이미 미국산 콩에 대한 수입규제조치가 마련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유럽연합 역시 같은 조치를 검토하는 중이다.

한편 중국정부는 5일 개회한 전국인민대표자회의에서 올해 철강생산량 목표를 작년보다 3,000만톤 낮게 책정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환경오염을 해소하기 위해서지만 무역 충돌로 인해 낮아질 수익성을 우려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 ‘면제 없는 일괄적용’ 앞에 작아진 한·일

중국과 유럽연합이 강경대응에 나선 한편, 동맹국에 대한 특별대우를 기대했던 캐나다와 일본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다량의 철강을 미국에 수출하는 캐나다와 일본은 미국과 가장 친밀한 국가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때문에 미국 상무부가 처음 트럼프 대통령에게 철강관세를 부과할 것을 권고했을 때도, 모든 국가에게 25%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이 확정됐을 때도 두 국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예외조치를 발표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과 국가무역위원회(백악관 소속) 피터 나바로 위원장이 “개별국가에 대한 면제조치는 없다”고 확언하면서 이들의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유일한 위안거리라면 나바로 위원장이 “‘예외’와 ‘국가면제’는 다른 것”이라며 “무역증진을 위해 특별한 사례에 예외절차를 둘 수는 있다”고 밝혔다는 사실뿐이다.

캐나다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관세부과방침을 확정한 2일(현지시각),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캐나다 산업을 보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우리보다 미국이 입을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반면 일본은 몇몇 내각 인사들이 미국 측 고위관리와 접촉해 특별대우를 요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국 역시 일본과 비슷한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내부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보도하며 “미국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대미 현장지원활동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고만 밝혔다. 현재 한국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전경련 등 정·재계 요원들이 백악관 및 미 의회 인사들을 상대로 관세부과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청하는 중이다.

당초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미국이 일괄관세정책을 택하면서 근거가 다소 약해졌다. 상무부의 보고서에서 한국이 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는 ‘특별관리대상 12개국’에 포함됐던 만큼 예외조치도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안보 등 미국과의 마찰이 달갑잖은 경제외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일본과 닮았다. ‘아웃리치 접근법’이 한계를 드러내기 전에 제2, 제3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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