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남북한 당국이 우리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 합의함으로써 이르면 내달 초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판문점에서 양측 간 실무협의 채널이 가동되는 등 준비 작업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예술단의 남한 공연이 열린데 대한 답방형태의 방북 공연은 남한의 대중음악이 10여년 만에 북한 관객을 찾아가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남한 예술단이나 가수의 방북공연에 물꼬가 터진 건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이 계기가 됐다. 이후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거쳐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봇물을 이뤘다. 2001년과 2002년 김연자 단독 공연, 2002년 남북교향악 연주회와 MBC 평양특별공연에 이어 2003년에는 통일음악회, 2005년 조용필 단독 콘서트까지 평양에서만 10여 차례의 공연이 열렸다.

특히 2003년 유경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에는 조영남, 이선희, 설운도와 함께 신화, 베이비복스 등 신세대 가수가 참여했다. 당시 베이비복스는 배꼽이 드러나는 복장으로 무대에 나서려다 북한 당국의 제지를 받았고, 의상과 댄스 등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북한 관객들의 모습이 TV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부 당국과 예술계는 이번 방북 공연을 통해 다양한 우리 음악과 가요를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예술단 평양공연을 위한 남북 실무접촉의 우리 측 수석대표 겸 음악감독으로 가수 윤상을 선임한 것도 이를 위해서라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통일부는 윤상이 발라드부터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 이르기까지, 7080에서 아이돌까지 폭넓은 음악경험을 갖췄다고 밝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이 같은 남북 간 문화교류를 두고 예술계는 남북 간 문화 이질화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남북 분단 70년을 넘기면서 민족동질성의 회복이란 측면과 함께 통일준비를 위한 차원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이다.

남북한 사이의 경제력 격차의 문제는 통일 과정에서 북한지역에 대한 투자와 복구 작업, 복지 투자 등의 방법을 통해 비교적 단기간에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문화 부문의 경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다 유무형의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징어를 낙지로 표기하고 있는 북한 우표. 왼쪽은 2000년 발행된 우표이고, 오른쪽은 1965년에 발행된 우표다.

남북 간 문화이질화의 문제는 언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방북 과정에서도 우리 기업이이나 대북지원 관계자, 언론인들은 이런 문제에 봉착한다. 언뜻 생각하면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일상 단어들조차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질화는 심화됐다. 문화적 이질감이나 체제의 차이에서 오는 소통장애까지 더해지면 서로 오해를 부르거나 감정이 상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남북한이 낙지와 오징어를 뒤바꿔 쓰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강원도 원산의 갈마식료공장을 찾았을 때 북한 매체들은 “명란젓과 창난젓, 말린 명태와 말린 낙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산물 가공품을 생산하는 현대적인 물고기 생산기지”라고 이 곳을 소개했다.

그런데 북한 매체가 ‘말린 낙지’라고 일컬은 건 잘 건조된 오징어를 가리킨다. 오징어를 낙지로 부르는 게 말이 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하지만 2000년 평양에서 발행된 한 장의 우표는 이런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10개의 다리를 가진 잘생긴 오징어 한 마리를 그려 넣고 ‘낙지’라는 이름과 학명(學名)까지 적고 있는 것이다. 앞서 1965년 발행된 우표도 마찬가지다. 오징어와 낙지가 뒤바뀐 모습은 분단 70년 동안 남북한 이질화가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예는 무척 많다. 방북 때 북측 안내원이 ‘무리등’이나 ‘살결물’ 같은 단어를 쓴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무리등은 우리말로 샹들리에를, 살결물은 화장품인 스킨로션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질화 추세대로라면 자칫 남북한을 한민족으로 묶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인 언어문화마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한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에서 남한 방송을 보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가 언어차이(33.3%)였다는 답이 나왔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72%가 언어문제로 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몇 년 전 국립국어연구원이 한국어문진흥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북한주민이 모르는 남한 외래어’ 조사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뉴스, 다이아몬드, 모델, 뮤지컬, 미니스커트, 콘돔 등 남한사람들이 우리말처럼 사용하는 외래어들이 북한 주민에게는 생소한 단어로 나타났다. 또 발레(바레, 이하 괄호 안은 북한식 외래어 표기), 마라톤(마라손), 러시아(로씨야), 베트남(윁남), 카이로(까이라), 베이컨(베콘), 멕시코(메히꼬), 마이신(미찐), 레일(레루), 달러(딸라) 등 남북 간의 표기가 크게 다른 사례도 많았다. 조사결과 남한에서 흔히 통용되지만 북한주민들이 모르는 단어는 8,284개나 됐다.

달라진 남북한 언어는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에도 불똥을 튀겼다. 무엇보다 자판 배열이 서로 큰 차이가 난다. 자판 문제는 자음과 모음을 사전에 올리는 순서부터 남북한이 다른 게 이유다. 최근 들어 북한에도 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전화가 400만대 가까이 보급되면서, 남북한의 서로 다른 핸드폰 자판까지 문제로 대두됐다. 자판 통일을 더 늦춰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한 남북 간 사회문화 교류는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이해를 돕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반목을 극복하고, 남북이 서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을 나눌 필요가 있다. 오징어와 낙지가 남북한 어디에서든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리게 해주고, 남북한 컴퓨터와 휴대전화 자판이 하나로 통합되는 게 진정한 통일준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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