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전반적인 금융안전성은 높아졌지만, '금융취약계층'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취약계층에게 저금리로 대출해준다는 금융기관의 광고 현수막.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금융위원회가 매월 발표하는 ‘가계대출 동향’ 자료는 최근 긍정적인 시사점을 던져줬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뽑히던 가계부채의 증가세가 둔화된 것이다. 2017년 한 해 발생한 가계대출 총 규모는 16년의 73% 수준에 그쳤고, 2년 연속 11%대를 기록했던 증가율도 7.6%로 떨어졌다.

반면 전반적인 개선추세를 보이고 있는 거시금융 안정성과 달리,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또 다른 위험요인이 잠복해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출해줄 곳을 찾기 위해 제2·3금융권을 전전하고, 이자 갚기에 허덕이는 ‘금융취약계층’이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이다.

◇ 150만 취약차주가 진 빚 82조원은 안전할까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2018년 3월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대체로 개선됐으며, 가계신용의 증가세도 앞으로 더 느려질 전망이다. 금융시스템의 전반적인 안정 상황을 나타내는 ‘금융안정지수’는 작년 내내 주의 단계(8~22)를 하회했다.

그러나 이는 ‘취약차주’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다중채무자 중 신용등급이 낮거나(7~10등급) 소득수준이 하위 30% 이하인 차주로 정의된다. 2017년 말 기준 취약차주의 대출규모는 82조7,000억원, 전체 가계대출규모의 6%다. 저신용 차주의 대출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다중채무자와 저소득 차주의 대출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16년 말 대비 4조2,000억원 증가).

신용등급이 낮다보니 취약차주들은 고금리를 요구하는 은행 외 금융업체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전체 대출액의 26.2%를 상호금융에서, 15.5%를 여신전문금융업체에서 빌렸으며 ‘제3금융권’으로 불리는 대부업의 비중도 10.2%에 달했다.

더구나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금리인상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들의 상환부담은 앞으로 더 가중될 전망이다. 이는 가계부채와 금융취약계층이 ‘한국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 취약차주의 수와 부채규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자료를 제시한 한국은행은 “대출금리 상승 시 이들 차주의 채무상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재무건전성 변화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 영업이익으로 빚도 못 갚는 한계기업 3,000곳 넘어

금융취약계층에는 사람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 또한 재무사정에 따라 대출창구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듣기 마련이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 100% 이상, 즉 영업이익이 금융비용(이자)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기업들을 일컫는 용어다. 다른 말로 하면 ‘기업계의 취약차주’다. 16년 말 기준 국내 한계기업은 총 3,126개로 전체 외감기업의 14.2%를 차지한다. 이 중 85.3%는 중소기업이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던 한계기업의 수는 재작년 소폭 감소했다(15년 말 3,278개). 그러나 폐업한 기업을 포함할 경우 한계기업의 증가세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또한 정상기업 중 19.2%가 이자보상비율 100~120% 구간에 있으며, 영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들이 한계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부동산·건설업 분야에서 재무상태가 좋지 못한 기업들이 유독 많았다. 작년 신규 한계기업 중 25.1%가 부동산·건설업 기업이었으며, 폐업기업 중에선 그 비율이 28.2%에 달했다. 전체 외감기업 대비 비율 18.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 금리인상과 대출규제 속에서 역할 중요해진 ‘포용적 금융’

금융이 양극화 해소와 소외계층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포용적 금융’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전 세계적 의제로 등장했다. 현 금융당국 또한 서민금융 지원을 중요 과제로 선정하며 금융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정책기조는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있는 듯하다.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멈추기 위해선 불가피한 조치다. 일종의 ‘대출 구조조정’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우려되는 것이 금융취약계층이 필요한 금융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가중된 상환부담을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다.

지난 26일부터 시중은행 대출심사에 도입된 ‘총 부채 원리금상환비율(DSR)’이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는 DSR이 일정 비율 이상일 경우 대출 총액이 제한되는 등 여러 규제를 받게 되는데, 해당 조치가 저소득층의 ‘생계형 대출’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을 나타내는 이 지표는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금리상승을 가정하고 차주별 이자 DSR의 변화를 추정한 결과, 금리가 1.0%p 오를 때 취약차주의 이자 DSR은 26.1%에 달했다(비 취약차주 10.1%).

물론 안전장치는 있다. 서민금융상품과 소액 신용대출, 취약차주 채무조정 상품은 DSR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이 예외조항들이 금리인상 기조에도 적응해야 하는 금융취약계층의 ‘대출과 상환의 이중고’를 모두 막아낼 것이라고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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