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요즘 여의도 국회에서는 입만 열면 개헌과 선거제도가 화두다. 권력구조를 어떻게 배분해야 효율적이고 삼권분립 정신에 부합할지, 민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선거제도는 어떤 방식이 좋은지를 놓고 각 정당마다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당의 입장이 꼭 의원 개개인의 입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지역구 의원인지 비례대표 의원인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지역구 민심, 선수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갖기도 한다. 본지가 국회의원 선거구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였다. <관련기사 : [선거제도가 문제다⑦] 국회의원 설문조사 ‘소선거구제 선호 44.1%’>

일단 설문지 포맷(형식)은 구글을 이용했다. 재적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이기 때문에 통계를 내기 쉽고 응답하기 편한 방식을 택했다. 질문도 간단했다. ▲어떤 선거구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정부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에 대한 생각은 어떠십니까 ▲소속 정당 ▲지역구/비례대표 등 다섯 문항이었다. 종이 설문지 300부를 뽑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메신저 앱이나 문자메시지로 설문지 링크를 전송하면 되니 이보다 쉬운(?) 취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소속 모 의원은 “1, 2, 1, 2, 2”라고 답신을 보냈다. 다섯 개 항목으로 된 설문에 대한 자신의 응답을 문자메시지로 회신한 것이다. 설문을 대신 해달라는 뜻인가? 응답을 ‘받들어’ 설문을 작성했다. 보좌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해 대신 작성하게 한 의원들도 수두룩했다. 20대 국회의원들의 평균연령이 55.5세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아예 설문에 응할 의사가 없는 의원들도 많았다. 적지 않은 의원들이 “한 번도 언론사 설문조사에 응한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익명으로 진행되는 설문이기에 부담 갖지 마시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바른미래당 모 의원의 경우 기자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 “바빠서 설문조사 할 시간 없다”고 했다. 기타 의견이 있으면 적어달라는 의도에서 남겨둔 ‘기타’란에 점(.)을 찍거나 질문과 관계없는 내용을 적는 성의 없는 답변도 있었다. 결국 재적의원 293명 중 구속 수감 중이거나 외유 중인 의원, 응답 거부 의사를 밝힌 의원 등을 제외한 250명에게 설문한 결과 152명이 응답해 응답률 60.8%가 나왔다.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우리는 걸어 다니는 헌법기관”이라고 말한다. 국회에서는 ‘당론’보다 개개인의 의견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지면 국회의원들은 정당에 관계없이 ‘1인1표’씩을 갖게 된다. 당론이 어떻건 의원 개개인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지부진한 개헌·선거구제 개편 논의에서 접점을 찾고 다수의 의견을 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설문조사가 그렇듯, 설문조사의 목적은 ‘공표’에 있다.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본지 설문조사 역시 의원들의 생각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간단한 물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모습이 지금 국회의 현주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의 개헌안이 발의된 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고 오늘(2일) 열렸어야 할 본회의는 파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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