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정책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연설비서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고여만 있던 한국 보수정치에 물꼬가 트였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옛말처럼 그동안 보수정치권은 고인 상태로 물이 썩어가고 있는지 몰랐다. 그런 자신들만의 웅덩이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실을 한국 보수정치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허나, 지금이 바로 기회다. 썩어가고 있는 고인 물을 버리고, 새로운 깨끗한 물을 받을 절호의 기회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역동의 역사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매우 복잡하고 애매한 구조로 형성되어 왔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와 일제의 잔재, 6․25전쟁을 통해 형성된 반공이데올로기, 독재의 그늘을 이어가고자 했던 사람들과 그에 맞서 저항했던 민주투사들 중 일부까지 합쳐져 있다. 짧지만 이렇게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의 ‘한국 보수정치’는, 권력을 유지하고 부를 이어가고자 했던 일명 ‘가진 자’들이 만들어 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한국에는 능수능란한 보수정치는 있지만, 보수주의 사상은 여전히 빈곤하다. 보수 정치세력이 그동안 의존해 온 것은 지역주의 정치와 박정희 시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정상회담 이후, ‘반공이데올로기’와 ‘철학 없는 보수 세력’만으로는 더 이상 한국 보수정치권이 버티기 어려워졌다. 진정한 보수를 해본 적이 없는 한국 보수정치권이, 더 이상 보수의 근본 없이는 지속할 수 없는, 존폐의 위기에 서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한국 보수정치권의 바탕이 될 기본 정치사상이 절실하다. 또한 결핍 상태인 전통의 정립과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 바탕이 없이는 어떠한 사상도 이념도 설 자리가 없으니 말이다.

‘필야정명(必也正名)’이란 말이 있다. 정치를 함에 있어 “반드시 먼저 명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이것을 ‘정명사상’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정치란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것”이라고 했다. 근본에 충실 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보수도 보수다워야 한다. 보수다운 보수를 ‘정명(正名)’하는 것이 바로 현 보수에게 주어진 과제다.

또한 기득권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한 가치가 아닌, 한 나라의 체제가 안정되고,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로 이끌어갈 정신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정화시키면서 안정된 웅덩이를 유지해 나가는 존경받는 보수,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리더’로서의 책임감 있는 보수를 기대한다.

이제, 평화의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적 가치가 있는 진정한 보수주의가 생겨 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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