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의 민간투자를 제시했다. 에너지와 식량 등 북한경제의 취약점을 해소하는데 미국 기업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북한의 핵과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을 맞교환하는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고 있다. 북한은 12일 풍계리 핵 실험장을 5월 중으로 완전 폐기하겠다고 밝혔으며, 청와대와 백악관은 나란히 긍정적인 반응으로 화답했다. 특히 미국은 민간자본의 이동을 허가할 수 있다는 말로 협상을 본격화시켰다.

◇ “경제지원 가능” 입 모은 폼페이오·볼턴

극비리에 북한을 찾으며 북미 대화를 주도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3일(현지시각) 방송에 출연해 양국 간 경제협력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할 경우 북한의 전력수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자본이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또한 폼페이오 장관은 재원이 미국 정부의 조세부담이 아닌, 민간부문의 투자로 마련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미국 대북전략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13일(현지시각)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국처럼 다른 세계와 교류하고 함께 행동하는 ‘정상 국가’가 될 것”이라며 미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필요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과 같은 ‘완전한 비핵화’다.

비핵화는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끊임없이 제기해온 요구사항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전과 같은 고압적 자세를 포기하고 회담장으로 나온 이유가 경제원조에 있다는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민간투자 허용을 골자로 한 경제협력은 정상회담 날짜가 6월 12일로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이 던진 일종의 당근인 셈이다. 동시에 핵 실험장 폐기선언 등 북한이 보인 ‘성의’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

◇ 공적개발원조 대신 민간투자 택한 배경

한국 또한 대북 민간투자를 시행한 적이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들과 금강산관광을 주도했던 현대그룹 등이 그 증인이다. 남북 교류를 활성화하고 경제적 연대를 도모했던 이 시도들은 이후 정치 환경이 변화하면서 모두 중단됐다.

그러나 ‘북미 경제협력’이라는 표현이 갖는 무게감은 남북 경제협력과 상당히 다르다. 경영 자율성과 국제화 정도가 높은 미국 기업들은 북한 개발사업에 참가할 역량이 충분하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주민들에게 ‘고기와 건강한 삶’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농업·식량 분야만 해도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카길 등의 거대 곡물기업들이 막대한 재고물량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 지원주체와 실행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이 전후 유럽의 부흥을 도왔던 ‘마셜 플랜’과 비교되는 이유다.

북한의 재정적 자립과 주민의 생활능력 제고라는 본래 목표 외에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들도 있다. 주한미군이 물리적 측면에서 전쟁가능성을 억제해왔다면 ‘북한에 소재한 미국기업’은 경제적 측면에서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국제기구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UN제재와 국제사회의 협력 등 남북경협을 추진해야 하는 한국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미국으로선 중국이 무역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구 공산권의 색채가 짙은 북한 경제에 ‘엉클 샘’의 표식을 남기는 것도 기대해봄직한 효과다.

민간투자라는 방식 또한 현재 미국의 상황에 어울린다. 적극적 재정정책을 좋아하지 않는 공화당 소속에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북지원을 위해 세금을 사용하는데 부담을 느낄 소지가 많다. 반면 자국 기업체가 진출할 길을 열어두는 방식은 조세부담이 적을 뿐 아니라 국가 주도의 공적자금원조(ODA)가 중국과의 동북아 역학관계에 미칠 영향도 피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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