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이 24일 국회에서 사실상 부결됐다. “2달 안에 표결해야 한다”는 헌법 130조에 따라 정세균 국회의장은 이날 본회의를 열고 헌법개정안을 상정했으나 정족수 부족으로 ‘불성립’을 선언했다.

청와대는 유감의 뜻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야당 의원들이 위헌 상태의 국민투표법을 논의조차 안한 데 이어 개헌안 표결이라는 헌법적 절차마저 참여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부과한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개헌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쳤고 앞으로 새로운 개헌동력을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다소 강하게 야권을 비판했다.

◇ 야권, '정략적 의도' 의심 

사실 이번 문재인 대통령발 헌법개정안이 부결될 것은 충분히 예상됐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까지도 표결강행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만으로는 개헌 가결 정족수인 192석에 한참 모자랐고, 예상대로 이날 표결도 민주당 의원 114명만이 투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의구심이 드는 대목은 부결될 것을 알면서도 왜 강행했느냐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두 달 안에 표결해야 한다는 헌법규정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도 해당 규정을 ‘대통령이 발의하면 국회가 논의해서 반드시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규범적 의미로 보지, ‘두 달’이라는 시기에 초점을 맞춰 ‘기계적·강행적’으로 해석하진 않는다. '회계연도 30일 전'으로 규정하고 있는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과 비슷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지방선거와 동시투표가 무산된 상황에서, 굳이 무리하게 표결을 추진할 이유도 없었다.

야권에서는 ‘정략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지방선거에 다시 개헌이슈를 끌어올려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방선거에서 내세울 공약 상당부분이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지방분권 개헌’과 관련이 깊다. 이는 지방분권 개헌에 반대한 ‘야권’은 선거에서 당선될 자격이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날 본회의 의사진행 발언에 나선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개헌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한다는 오인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 21대 총선 공약 차원서 재추진 전망

대통령 헌법개정안은 야당 의원들의 보이콧으로 민주당 의원들만 참석한 채 진행돼 결국 정족수 미달로 불성립됐다. <뉴시스>

일각에서는 야권이 더 이상 개헌카드를 꺼내지 못하게 못박아두려는 의도로도 해석한다. 개헌논의는 그 자체로 국정동력의 상당부분을 갉아먹는 측면이 있어, 정권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국회의 논의자체를 틀어막기까지 했었다. 정부도 향후 추진에 부정적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법과 예산으로서 개헌안 취지를 살리겠다”며 개헌에 선을 그엇고, 또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현안이 산적한데 언제까지 개헌에만 매달릴 순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은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국민개헌자문특위 위원장을 겸임했던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을 통해서다. 정 위원장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발의를 결정할 때부터 부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개헌을 추진한 이유는 국민들 사이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완전히 접은 것도 아니라는 게 정 위원장의 판단이다. 물론 추진 시점은 야권의 생각과는 다르다. 자유한국당은 ‘연내 개헌’을 주장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여론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대통령 발의안을 논의조차 못했는데, 국회에서 논의해 올해 안에 개헌안을 만들어낸다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즉 20대 국회에서는 추진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다시 개헌을 추진한다면 그 시점은 21대 총선이 치러지는 2020년이 될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개헌카드로 민주당 단독 개헌정족수를 노려볼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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