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페소가치가 급락했다. 작년 말까지 1달러에 17페소, 올해 4월까지도 20페소 수준이었던 환율은 지난 16일 25페소까지 상승했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6월 중 세계 신흥국이 경제위기를 맞는다는 ‘6월 위기설’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신흥국들이 처한 금융국면이 1990년대 후반의 IMF사태 당시와 닮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언뜻 견실한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남유럽과 중남미 국가들에서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금리인상에 유가상승…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 우려 높아져

신흥국 위기설의 핵심은 통화의 불안정성이며,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점쳐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십 년 가까이 0%대에 머물러있던 미국의 기준금리는 오는 2020년에는 3%대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지난 8일 취리히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미국 통화정책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흥국의 경제여건보다는 국내 변수를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금리 상승은 곧 화폐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상은 반대로 신흥국에겐 통화가치 하락을 뜻한다. 신흥국의 투자유인능력이 약해지면서 수익성에 민감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신흥국이 자본유출에 시달리는 ‘긴축발작’은 통화정책 완화 국면에서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다.

두 번째 원인은 유가의 상승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 21일 발표한 ‘국제유가 상승의 신흥국 통화 영향’ 보고서에서 국제유가의 급등이 신흥국 통화의 불확실성을 키웠다고 밝혔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유, 두바이유 등 세계 주요 원유의 가격은 지난 2·3월부터 상승세를 탔으며, 뉴욕증권거래소(MSCI)가 발표하는 신흥국통화지수는 4월 중순 들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5월 29일(현지시각) 현재 신흥국통화지수는 1,669.68로 연내 최고점(1,728.89)보다 3.4% 이상 낮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전망치를 상회하는 유가는 인플레이션 경로를 변경하고, 이는 다시 신흥국 정책기조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주요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성장 모멘텀 둔화에 대한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만큼, 유가의 지속적인 상승이 신흥국의 대규모 자금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증산에 합의하면서 한 풀 꺾인 상태다. 5월 30일 현재 브렌트유 가격은 75.39달러로 지난주(79.80달러)보다 다소 낮아졌다. 다만 현재 관측되는 가격안정세가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국제금융센터는 “미국의 이란 핵 협정 탈퇴에 따른 공급차질과 중동의 정정불안 우려에 의해 유가상승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한국, 경제안정성 높지만 해외 금융위기 여파 조심해야

아르헨티나와 터키, 브라질은 최근 통화가치의 급락 사태를 겪었다. 이들이 겪은 외환위기가 인근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주된 원인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강한 달러’다.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2018년 4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984억2,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며, 전 세계로 따져도 세계 9위 수준이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스위스·캐나다의 중앙은행과 통화스왑 계약을 체결하며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을 ‘신흥국 통화위기설’의 안전지대로 뽑고 있다.

다만 국제경제계가 수많은 교류를 반복하며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상, 신흥국의 통화위기설이 현실화된다면 한국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것은 수출의 감소. 국가경제가 어려워지면 수입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경제통계사이트 ‘OEC’에 따르면 2016년 한국 수출액 중 세계 선진국(미국·일본·영국·독일 등)과 외환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아시아 신흥국(중국·홍콩·베트남·싱가포르 등)을 제외한 국가의 비중이 약 27%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최근 통화급락 사태를 겪은 이탈리아와 동유럽 국가들, 브라질·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 국가들이 포함돼있다. 다만 한국이 상품교역에서 꾸준히 흑자를 기록해온 만큼 수출실적의 감소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보다 현실적인 걱정은 금융시장의 불안에 대한 것이다. 30일 한때 코스피 2,400선이 붕괴된 원인은 이탈리아의 정치 불안에 있다. 이는 내각 구성에 실패한 포퓰리즘 정당이 정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럽연합 체제에 반대하는 우파정당과 연대하고, 이탈리아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점쳐지자 유럽연합의 불안정성과 이탈리아의 막대한 국가부채가 부각된 결과다. 세계 정치·경제계가 얇지만 튼튼한 끈으로 묶여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당장의 견고한 금융지표에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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