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을 줄이면서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생산성의 제고가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노동생산성 제고 정책은 노동시간을 관리하는 데부터 시작한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도는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근무시간’ 대신 ‘더 높은 노동생산성’을 택했음을 뜻한다. 노동자가 일정 근무시간동안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는지를 뜻하는 생산성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그리고 고령화시대에서 늘어나는 고령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최하위권

2015년 기준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28위, 연간근로시간(순위가 높을수록 연간 근로시간이 감소)은 31위에 머물렀다. OECD 전체 24위의 임금수준이 높은 것처럼 느껴지는 자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같은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동생산성 순위가 1997년 자료와 비교해도 단 3계단, 연간근로시간은 1계단 상승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고용률 등의 양적 지표 순위는 하락, 질적 지표 순위는 여전히 중하위권에 머물렀다”는 평가도 내렸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1997년 15.6달러에서 2015년 31.8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46.7달러)의 68.1% 수준에 불과하다. 룩셈부르크·아일랜드·노르웨이 등의 소규모 국가는 물론 미국(62.9달러)이나 독일(59.0달러), 일본(41.4달러)보다도 훨씬 낮다. 연 2,00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이 무색해진다.

OECD는 지난 5월 30일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도 생산성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대해 “민간소비 진작이 기대된다”면서도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고용이 둔화되고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직원의 만족도와 자율성이 생산성 높여”

근무시간의 탄력적인 운영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직원의 높은 만족도와 자율성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디어다. 근로자 개인이 자신의 일정과 컨디션에 맞춰 출퇴근시간을 설정하는 ‘유연근무제’가 대표적이며, 전자통신기기를 이용해 집에서 회사와 연락하며 일하는 재택근무제나 특정한 날에 몰아서 일하는 집중근무제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 유연근무제는 특히 육아를 위해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기혼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긴 근로시간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갈수록 늘어나는 고령인력을 활용하기에도 유용하다.

유연근무제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한국에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다. 사진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유연근무제가 실행된 경북도청의 사무실. <뉴시스>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서서히 도입되고 있는 유연근무제는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보편화된 노동제도가 됐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인 출퇴근제도인 ‘나인 투 파이브’를 포기하고 주 40시간 노동의 틀 안에서 유연성을 늘려나가는 추세다. 지난 2014년 미국 내 50인 이상 기업 1,051곳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미고용주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업장의 61%는 대다수 혹은 전체 근로자들에게, 31%는 일부 근로자들에게 한해 언제 휴식시간을 가질지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출퇴근시간을 조정하고 있다는 사업장은 81%에 달했으며 네 곳 중 한 곳은 모든 근로자들에게 초과근무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한 술 더 뜬 기업들도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선두주자 넷플릭스와 유명 게임제작회사 라이엇게임즈 등은 휴가일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무제한휴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무제한휴가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직원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줄었을 뿐 아니라 장기휴가 사용이 줄고 근무태도 관리비용·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 각종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직원들 간의 소통과 신뢰, 그리고 성과 중심의 평가체계가 갖춰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국내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16년에 국내 기업 300여 곳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국내 기업의 92.8%가 제도시행 결과에 만족했으며, 생산성 향상과 이직률 감소를 가장 큰 효과로 뽑았다.

◇ 중소기업 생산성 제고 위해 ‘기술 확산’ 필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생산성 격차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 중 하나다. 산업연구원은 작년 3월 발표한 ‘최근 10년간 중소기업의 구조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2014년 기준 중소기업 근로자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이 대기업의 30.6%에 그쳤으며, 이는 2004년(31.3%)보다도 낮은 수치였다고 밝혔다. 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확대된 배경을 연구한 한국은행의 연구보고서에서는 선도기업과 후행기업의 생산성 차이가 임금격차의 주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기술 확산은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안되는 방안이다.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벤치마킹이나 기술이전 등을 통해 대기업과의 기술격차를 메우고 자체 기술을 개발한다. 이 과정을 가로막는 것이 부족한 정보공유·성과공유체계와 이미 높은 수준까지 진행된 글로벌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이다. 이는 중소기업에겐 혁신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고, 대기업에겐 기술 확산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서 기업 간 생산성 격차를 줄이는 것이 가능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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