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시킨 신용평가분석기법이 주목받고 있다.<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드론부터 3D프린팅까지,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하나 둘 현장에서 활용되는 시대다. 신용평가사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방대한 정보를 수집‧가공할 수 있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은 더 객관적인 기업신용평가 보고서를 더 빠르게 발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 “AI·빅데이터 기술로 기존 신용평가 방식 한계 극복 가능”

서울신용평가가 ‘SCR 웹진’ 6월호에 실은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신용평가의 변화 시도’ 리포트(박인천 기업/금융평가본부장‧박현희 금융평가실장)는 신용평가업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기존 신용평가방법론의 한계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회계정보 외의 정성적 요소에 대한 평가가 어렵다는 점은 현 신용평가체계의 구조적 한계로 지적받는다. 기업신용평가구조에서 정성적 평가의 비중은 기업특성에 따라 59%까지 산정돼있을 정도로 높지만 이들을 평가할 만한 객관적 근거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서울신용평가 측은 거래처와의 관계·브랜드 인지도·기술력 수준과 금융시장 내 평판을 평가가 어려운 정성적 요소의 사례로 들며 해당 분야에 대한 정보 부족이 “애널리스트의 자의적 평가, 또는 기존 신용등급에 의존한 보수적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텍스트 마이닝과 같은 빅데이터 분석기법이다. 인터넷과 SNS, 언론기사와 같은 텍스트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단어들을 추출해내는 텍스트 마이닝은 투자자와 소비자의 심리와 같은 정성적 평가의 근거들을 수집‧분석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적시성에 대한 약점도 개선될 수 있다. 정성적 평가가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회계정보(감사보고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기업이 공시하는 재무제표는 3개월 이상의 시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용평가에도 3개월 이상 묵은 데이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반면 주가와 신용 스프레드 등 다양한 데이터를 발굴‧분석할 수 있는 AI 평가기법은 회계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매월 또는 매주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것도 가능하다.

해외 선진국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빅데이터‧AI 신용평가 알고리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에 기반한 신용평가업체 ‘빅 데이터 스코어링’의 경우 올해 1월까지 은행과 통신사 등에게 100만개의 신용평가정보를 제공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대출심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신용평가의 경우 2013년부터 공시된 신용등급을 대상으로 자체 개발한 AI 평가모형을 적용한 결과 97% 수준의 예측정확도가 기록됐다고 밝혔다.

◇ AI평가에 대한 신뢰도 확보 필요… 데이터 규제는 갈 길 멀어

AI 신용평가기법의 실용화를 위해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신기술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미흡한 제도가 그것이다.

AI 및 빅데이터 신용평가기법은 그 우수성과는 별개로, 신용등급이 도출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신용등급이 기업의 대외신뢰성과 투자유치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동화된 신용평가체계가 의뢰자의 신용등급을 깎아낼 경우 이로 인한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내로라하는 바둑기사들이 알파고의 수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신용평가사들도 ‘알고리즘이 결정했다’는 설명밖에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AI분석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신뢰가 자리 잡기 전까지는 애널리스트들이 개별적으로 검증을 거치는 전통적 방식이 병행될 가능성이 높다.

각종 규제로 인해 분석에 사용할 기업 정보의 수집이 제한된다는 것은 빅데이터 신용평가사업의 존립을 위협하는 문제다. 금융 현장에서는 빅데이터 산업의 진흥을 위한 개인정보규제 개편이 꾸준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인천 기업/금융평가본부장은 “현재 확보 가능한 정보는 언론기사·SNS·인터넷 등을 통한 간접 정보가 대부분이다. 기업·금융기관 및 정부가 보유한 정보에 대한 접근은 대부분 차단돼있는 상태며, 특히 비상장 중소기업의 경우 데이터 부족이 더 심각하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유관기관과 학계‧산업계 인사들을 초청해 금융데이터의 활용방안을 논의하고 개선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법‧제도를 개편해 익명정보 수집이 용이하도록 개인정보보호체계를 수정하고, 기업신용평가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 등이 발표됐다. 다만 데이터 저변 확대를 위해선 아직까지 개선해야 하는 규제가 많고, 개인 대상 신용평가에 대한 논의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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