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사건의 실종자 가족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김현희가 군사정권의 연장을 위해 이용됐던 도구라고 주장했다. 주범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31년 전의 일이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사라졌다. 탑승자 115명은 전원 실종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북한에 의한 테러로 규정했다. 주범으로 김현희와 김승일이 지목됐다. 두 사람이 김정일 정권의 지령을 받은 특수공작원이라는 것이다. 체포 과정에서 김승일은 자살했다. 김현희는 자살에 실패해 사건의 유일한 증인으로 남았다. 이른바 ‘KAL기 폭파사건’이다. 일각에선 폭파범의 이름을 따서 ‘김현희 사건’으로 부른다.

◇ “김현희는 종범에 불과하다”

해당 사건은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에서 재조사에 나섰으나, 이전과 같은 결과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물론 한계가 있었다. 김현희가 재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등의 면담 요구에도 회피했다. 그럼에도 자신에 대해선 ‘살아있는 증인’으로 주장했다. 도리어 참여정부 시절 사건 조작 증언을 강요받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전두환 정권에서 개입한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김현희는 안기부 공작원으로 “종범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주범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 전두환 정권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3대 대선을 하루 앞둔 1987년 12월15일 김현희를 입국시켰다. 다음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필요했던 사건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현희는 1990년 살인·항공기폭파치사·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특별사면됐다. 노태우 정부는 “역사의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들의 질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사건 발생 당시 안기부는 사고 현지에서 테러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북한의 테러임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 그리고 김현희의 진술 외에 정부의 수사 발표를 뒷받침할 물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찾던 유해나 유품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김현희 조작 논란과 관련 “김현희의 정체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갖 의혹들은 해명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실종자 가족들은 다시 한 번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실종자 어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진상규명을 마무리 져야 한다”는 게 신성국 신부의 각오다. 그는 KAL기 대책본부 총괄팀장을 맡고 있다. 신호탄은 쏘아 올렸다. 28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 사람이라도 가족으로서 확인할 수 있는 유품을 찾아주면 인정해 주겠다고 수없이 외쳤다”고 울분을 토하면서 “폭발에 대한 물증도, 사고 지점의 확증도, KAL858기의 잔해도 어느 것 하나 입증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 공방도 예고했다. 내달 중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현희를 고소할 방침이다. 현재 실종자 가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회고록을 통해 사건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게 실종자 가족들의 주장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앞서 그는 회고록에서 김현희 조작 논란에 대해 “김현희의 정체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갖 의혹들은 해명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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