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호 청와대 일자리 수석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멕베스에는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왕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을 것인지 고민하는 대목에서다. ‘왕위’라는 찬란한 영광이 성배라면, 그에 따르는 비극적 결말이 ‘독’이다. 현대에 와서는 매우 중요도가 높은 자리지만 그만큼 위험성이 크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이른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의 대표적인 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서 ‘독이 든 성배’를 꼽으라면 일자리 수석을 들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문제 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며 취임일성으로 ‘일자리 정부’를 표방할 정도로 중요하게 보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해 매일 변동사항을 체크하고 국민 누구라도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치할 정도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인상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주요 정책들은 일자리의 ‘순증’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일자리의 ‘질’이 좋아진 만큼, ‘양’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비정규직 증가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펼쳤다면 일자리의 양은 늘었겠지만 질은 낮아졌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실제 문재인 정부 1기 일자리 정책의 성적표는 좋지 않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지난 5개월 연속 좋지 않은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각 부처와 참모들에게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음에도 나아질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반장식 일자리수석 등 참모진 3명이 옷을 벗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외부요인이 아닌 순수한 첫 인사교체였다. 청와대는 ‘경질’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경제계와 언론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 것으로 해석한다.

뒤를 이은 정태호 일자리 수석은 정책기획비서관을 맡아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이자 범정부 정책조율을 맡은 정책기획위원회를 출범시킨 인물이다. 실무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해 문 대통령으로부터 신뢰가 두텁다고 한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성과를 내기 위한 인사"라고 말했다.

청와대도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26일 청와대는 조직개편을 통해 ‘자영업 비서관’을 신설하고 일자리 수석실 산하에 배치했다. 700만에 달하는 영세 자영업자는 ‘자기고용노동자’로서 일자리 측면에서 따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판단에서다. 또한 일자리 수석실 산하의 중소기업비서관은 중소벤처비서관으로 명칭을 변경해 영역을 넓혀줬다. 

청와대의 이번 조직개편으로 ‘일자리 창출’과 ‘자영업 문제해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난제 두 가지가 정태호 수석의 손에 놓이게 됐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처럼 찬란한 영광을 누릴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지는 오롯이 그의 실력에 달렸다. ‘독이 든 성배’는 결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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