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개의 직전 "오늘은 날도 더운데 겉옷을 좀 벗고 합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회의실에서 “날도 더운데 겉옷을 좀 벗고 합시다"는 말이 쉽게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뉴시스>

[시사위크=최영훈 기자] “오늘은 날도 더운데 겉옷을 좀 벗고 합시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개의 직전 한 말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바로 정장 상의를 벗었고, 회의에 참석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비대위원들도 함께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바라 본 기자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비롯해 상당수의 국민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 겉옷을 벗는 장면과 닮았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수석·보좌관회의부터 넥타이 없이 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날이 더울 때면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벗고 회의하자”는 말도 먼저 했다. 이를 두고 국민들은 ‘탈권위주의적’이고 ‘소탈’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겉옷 좀 벗고 하자”고 말한 것은 다분히 문 대통령을 의식해서 한 말이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세 박자가 어우러진 권위주의적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행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당 비대위는 ‘엄·근·진’ 이미지 탈피 차원에서 보수가치 재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회의실에서 “날도 더운데 겉옷을 좀 벗고 합시다"는 말이 쉽게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비록 김성태 원내대표가 ‘진짜 더워서 벗었냐’는 기자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나는 더워서 옷을 벗었다”고 말했지만, 에어컨 앞에서 ‘덥다’는 말에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 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벗고 하자”는 말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난해 8월 청와대 오픈하우스 행사를 다녀온 한 기자는 “여민관이 냉방이 안 돼서 이렇게 더울 줄 몰랐다”고 했다. 여기서 여민관은 문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최근 폭염 속에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 현장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도 더위에 녹초가 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진짜 ‘더위’에서 비롯된 ‘탈권위주의적 행보’인 셈이다.

물론 한국당은 ’탈권위적’이며 ‘소탈’한 정당으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일 폭염 속에 거리로 나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행보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3팀으로 나눠 진행한 민생현장 탐방에서 한국당 비대위원들은 국민에게 ‘쓴 소리’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그 ‘쓴 소리’를 당 혁신에 반영하겠다고도 했다.

여기에 한국당은 국민들에게 ‘진심’을 보이기 위해 민생현장 탐방을 언론 비공개로 진행했다. 하지만 한국당이 현장 민생행보 직후 공개한 출발지를 들여다본 뒤 다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당이 공개한 민생행보 출발지는 서울 강서구, 양천구, 도봉구 등으로 각각 김성태 원내대표, 김용태 사무총장, 김선동 여의도연구원장 지역구였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탈권위적’이며 ‘소탈’한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출이 아니라 진심어린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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