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국내 금융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비트코인 열풍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아직은 개념도 원리도 모호하지만 블록체인은 전자금융 시스템을 한 차원 발전시킬 수 있는 혁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사업자들뿐 아니라 금융당국에서도 블록체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상용화를 논의하는 모습이다.

◇ 블록체인 기술 적극 도입하는 해외 증권거래소들

금융감독원은 2일 ‘해외 증권거래소의 블록체인 기술 도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며 국내 금융계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안성과 투명성이 뛰어나고 운영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증권거래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이미 주식·파생상품 거래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해외 증권거래소들의 사례를 분석해 국내 금융권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융감독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의 증권거래소들에서는 블록체인 금융시스템이 하나둘 구축되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미국 나스닥은 가장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받아들인 증권거래소로 손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넷플릭스, 바이두 등 유명 기술기업들이 다수 상장돼있는 나스닥은 2015년 10월 개발한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 ‘링크’를 통해 비상장주식을 거래하고 있다. 매매·청탁 분야에서 이미 블록체인 기술의 완전 도입이 완료됐으며, 작년 5월에는 씨티그룹의 다중통화 결제 서비스와 연계해 결제 간소화에도 성공했다. 당초 3일 이상 소요되던 비상장주식의 결제 과정이 10분으로 단축됐을 정도로 효율성이 향상됐다.

코인데스크 자료에 따르면 작년 7월 기준 세계 30대 은행 중 14곳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개념검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63개 증권거래소 중 21곳이 분산원장 기술(개인 참여자들이 거래 장부를 공유·감시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여기에는 바클레이스·뱅크 오브 아메리카·RBS 등의 대형은행들과 인도·칠레·러시아 등지의 증권거래소 등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포함된다.

◇ 한국은 개념검증·시범사업 단계… 우선과제는 ‘규제완화’

금융감독원은 이번 해외사례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금융권의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기술의 실용화를 위해선 물론 기술개발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제도상의 걸림돌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금융 분야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혁신 스타트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었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에서도 핀테크 산업육성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규제완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작년 6월 발간한 ‘블록체인의 활용과 규제 현황’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위해 선제적 규제보다는 불간섭주의, 거시건전성 규제보다는 영업행위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시 말해 포괄적이고 원칙적인 규제제도보다는 보다는 구체적인 소비자피해 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다 보니 법적 정의와 책임소재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016년 11월부터 장외시장 스타트업 주식거래 시스템 KSM에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디지털증권에 대한 법적 정의가 명확치 않다보니 거래내역 확인서 발급 등의 제한적인 부분에서밖에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당장 유의미한 결과물이 도출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증권거래소(ASX)에 따르면 개념검증부터 시스템 도입까지, 증권거래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식하는 과정에는 약 5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보다 빠른 시일 내에 실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프로젝트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블록체인 전자투표시스템에 대한 개념검증(신기술 도입 전 성능·기술을 점검하는 단계)을 작년 12월에 마치고, 올해 하반기 중 시범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채권 장외결제 모델 역시 오는 9월 말 완료를 목표로 개념검증 컨설팅이 진행 중이다. “거래내역 위조·변조와 해킹, 결제교착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블록체인 결제모델의) 기능성·안정성·보안성·효율성을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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