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보상뿐 아니라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의 성격도 갖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BMW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면서 한국의 손해배상제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 제도로는 달리는 차량이 불타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요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영국과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 실효성 없는 ‘3배 배상’

지난 7월 13일(현지시각) 미국의 유명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은 세인트루이스 법원으로부터 원고 22명에게 총 46억9,00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받았다. 존슨앤존슨의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됐으며, 이것이 피해자들에게 난소암을 발병시킨 것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46억9,000만달러 중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은 5억5,000만달러며 나머지 41억4,000만달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따른 배상금이다.

반면 보상적 손해배상, 또는 전보적 손해배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의 배상제도는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없었던 것처럼 만들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즉 소비자가 피해를 본 액수만큼 배상하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일부 법령에서 피해액 이상의 배상을 규정한 조항들은 있다. ‘제조물 책임법’ 3조는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로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불거진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인해 제조물 책임법이 개정되면서 생긴 조항이다. 한편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35조는 원 사업자가 부당하게 하도급대금을 결정·감액하거나 위탁을 취소한 경우 등에 대해 “발생한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우선 액수가 적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최적 손해배상액은 피해액수와 제소확률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 중 실제로 소송을 제기하는 비율은 상당히 낮다. 소송을 진행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다보니 일반 소비자가 기업과 법정다툼을 벌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손해배상 규모를 피해액의 3배로 제한하는 것으로는 ‘처벌’의 역할을 다하기 힘들다.

한편 범위가 생명과 신체로 한정돼있어 BMW 사태와 같은 재산피해에 대해선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은 현행 제조물 책임법의 또 다른 맹점으로 뽑힌다.

◇ 원활한 시행 위해선 배상한도 확정·법적 안전장치 마련 필요

손해배상한도를 어느 정도로 규정할지에 대해선 입법을 논의하고 있는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홍영표 원내대표가 차량결함사고에 8배 배상을 선고한 미국의 사례를 언급했고, 백재현 의원의 경우 지난 2016년 손해배상한도를 12배로 규정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반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박순자 위원장(자유한국당)은 7일 CBS방송의 라디오에 출연해 “5배 정도가 적정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원활하게 시행되기 위해선 추가적인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재판 전 원고와 피고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공개해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 대표적이다. 또한 형사소송이 담당하던 처벌의 기능이 민사소송으로 이전되는 만큼, 손해배상과 형사처벌·행정벌이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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