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25.6명)은 지난 2003년 이후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고수해오고 있습니다. 최근 그동안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헌신해 왔었던, 그렇지만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嫌疑)를 받고 있던, 한 정치인의 자살로 인한 안타까운 사망 사건을 계기로 삼아 지난 7월 말 관계당국인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새롭게 마련해 발표한 것 같습니다.

마크 시뇨르(Mark Sinyor) 박사 연구팀은 지난 7월 30일 캐나다의학협회지(CMAJ)에 ‘자살로 인한 사망과 미디어 보도 사이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문을 통해 자살(自殺) 관련 언론기사에서 ‘자살(suicide)’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부각시키거나, 동기를 구체적으로 보도될 때 모방자살 위험이 최대 두 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물론 현상적인 차원에서 자살 방지를 위한 이런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위해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전방위 교육과정, 즉 가정교육과 학교교육과 사회교육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아니 궁극적으로는 ‘자살’이라는 분별조차 일어나지 않도록 적절한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할 때라고 봅니다.

사실 인간인 이상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실수는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실수를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성인이 되어 지은 죄의 경우 경중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적극적으로 받는 마음 자세를 교육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잠시 판단이 흐려져 저지른 범법행위를 포함해 그 어떤 경우이든 이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탈바꿈 시키며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길을 굳세게 걷게 하는 원동력인 ‘참회(懺悔)’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실천적으로 살았던 정약전과 소동파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그리고 ‘살(殺)’의 멋진 쓰임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장부의 기상

먼저 죄와 참회에 대해 서산대사께서 <선가귀감(禪家龜鑑)> 제69절에서 명료하게 제창한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탐욕으로 인해 죄를 지었을 경우 즉시 참회하고, 분노하여 화를 냈을 경우 즉시 부끄러워한다면 ‘장부(丈夫)의 기상(氣象)’이 있는 것이다. 또한 어리석음으로 인한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지면’[개과자신(改過自新)] 죄는 그 마음을 따라 저절로 소멸할 것이다.[죄수심멸(罪隨心滅)]” 이어서 주석을 통해 다음과 같이 보다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참회란 이전에 저지른 허물을 뉘우치고 이후 다시는 잘못이 없도록 반성한다는 뜻이다.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여기며 잘못을 책망하고, 밖으로는 뉘우치며 그 잘못을 남들에게 숨김없이 고백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여 결코 죄업(罪業)이 발붙일 곳이 없다.”

이런 참회 정신을 실천한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2015년 8월 중순 무렵 당시 남양주시 3선의 중진급 국회의원이었던 박기춘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다보면 많은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부디 후배들은 나처럼 되지 말기를!” 당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과오를 시인하였다고 합니다. “군대 갔을 때를 제외하고 남양주를 떠나본 적이 없다. 구속되면 또 한 번 고향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질 텐데…. 내 불찰로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하니 마음 아프다. 그래도 내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달게 받고 출소하면 고향에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 분은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범법행위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이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아 출소 후 남은 여생을 뜻 있게 살아가시리라 확신합니다. 참고로 <자비수참법(慈悲水懺法)>에서는 “만약 부끄럽게 여기며 참회하는 자라면 어찌 저지른 죄를 소멸시키는 데 그치겠는가!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을 늘려서 여래의 열반이라는 뛰어난 결과까지 세우게 될 것이다.”라고 참회의 공덕이 깨달음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고 제창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도소에서 치열한 내적 성찰 노력을 통해 나름대로 통찰체험을 하고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교도소를 국립선원(國立禪院)으로 삼아 깊은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신 분들까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인간인 이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죄를 지을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니 죄를 지었을 경우 부디 당황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말고 이런 분들의 삶의 태도를 본받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에 대한 대가를 받고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마음의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 정약전의 서재 일화

물론 ‘소사성대(小事成大)’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비록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날마다 저지르는 사소한 과실들조차 매일 철저히 참회한다면 감옥에 갈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매일 참회에 대한 일화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치밀한 고증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인 <자산어보>를 저술한, 이조(李朝) 때 진솔한 삶을 살았던 정약전이 학문의 동반자인 동시에 동생인 정약용에게 자신의 서재(書齋)를 ‘매심재(每心齋)’라고 지은 까닭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 기록이 있습니다. “매심이란 뉘우침(悔 = 心+每)이다. 나는 뉘우칠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그러한 뉘우칠 일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에 두려고 하기 때문에 ‘매심(每心)’을 서재의 이름으로 지었다.”

매일 참회하는 삶을 통해 저절로 갖추어진 인품을 엿볼 수 있는 그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친동생인 정약용은 1814년(순조 14) 여름, 곧 유배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것 같다며 흑산도로 가서 형을 뵙겠다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이에 정약전은 “아우가 나를 만나기 위해 험한 바다를 건너게 할 수 없다”며 뭍에서 가까운 우이도로 거처를 옮겨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흑산도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정약전을 떠나지 못하게 애썼다고 합니다. 후에 이 일화를 접한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며 형님을 기렸습니다.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다른 섬으로 옮겨 가려 하자 흑산도의 백성들이 길을 막고 더 머물게 하였다는 것은 형의 덕화(德化)가 그만큼 컸음이 아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귀양살이를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삼은 두 형제의 삶과 저술은 조선후기 지성사를 더욱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물론 비록 조선은 망할 때까지 이 분들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누구나 이 분들의 저작과 삶의 태도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매일 참회를 통해 흔들리는 마음자세를 늘 새롭게 다잡으면서 가장 시급한 일에 즉해 자기의 전문적 기질을 유감없이 나투며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수 있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 소동파의 사설병원 일화

이번에는 중국 북송(北宋) 때의 시인이며 고위 관리였던 소동파(蘇東坡)가 그의 사후 1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칭송이 자자한 그의 삶의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청소년들을 위한 윤리도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성심편省心篇’에 그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까닭 없이 천금을 얻는 것은 큰 복이 아니라 반드시 큰 재앙이 될 것이네.”[무고이득천금(無故而得千金) 불유대복(不有大福) 필유대화(必有大禍).] 그는 이런 정신을 일관되게 지키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일생 동안 헌신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일화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그가 항주에 부임했을 때, 지역유지들의 후원으로 중국 최초로 가난한 백성들을 치료할 목적으로 ‘안락방(安樂坊)’이란 사설 병원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는 직접 약을 조제해 백성들을 치료하기도 했는데, 이 약 값은 한 첩당 거의 거저나 마찬가지인 1문(文)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1000문에 해당하는 은 1냥은 쌀 8석(144kg)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설 병원이라 병원 운영을 위해 때때로 기금 마련이 필요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모금했던 운영자금이 떨어져갈 무렵인 아들 결혼식 때, 한 지역 유지가 축의금 명목으로 뇌물성이 짙은 은자 150냥을 주었는데,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소동파가 이 돈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자 오히려 돈 준 유지가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동파로부터 이 돈의 용도에 대한 편지가 왔습니다. 거기에는, ‘당신의 이름으로 안락방을 확장하는데 잘 썼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아직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뇌물성이 짙은 선물을 받았을 때 유혹당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소동파의 사례처럼 준 사람의 이름으로 공익법인 등에 기부하는 것도 조기 기부문화 정착을 위한, 지혜로운 한 방안이라 판단됩니다.

황주에서 6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호가 된 ‘동쪽 언덕’[東坡]에 초암을 짓고 황무지를 개간하며 치열하게 선(禪) 수행을 이어가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지혜를 온몸으로 체득했던 소동파는 임종 직전 세 아들을 불러놓고, “나는 일생동안 추호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다음 절대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부디 울며불며 통곡하지 말라!”는 최후의 한마디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가 이 구절을 대하노라면 늘 제2차 세계대전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며 인류 평화에 크게 기여했던 윈스턴 처칠 경의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내가 살아온 인생길을 그대로 다시 살고 싶다!”라는 유언도 함께 떠올리곤 합니다. 본질적으로 똑같은, 이 얼마나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당당한 외침입니까! 사실 이런 분들의 삶 속에서 어디 ‘자살’이라는 분별이 일어날 여지가 있었겠습니까! 제 견해로는 이 분들은 자식들에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물질적인 유산(遺産)의 탈법적인 증여가 아니라, ‘너희들도 나와 같이 오직 어려운 처지의 백성들을 돕는데 헌신하며 청렴결백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라!’라는 값진 유훈(遺訓)들을 남긴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 ‘살(殺)’의 멋진 쓰임

끝으로 최근 높은 기온이 자살률의 증가와 연관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도 발표된 가운데, 요즈음 대한민국도 무더위에 크게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더위를 돌파할 지혜가 <벽암록(碧巖錄)> 제43칙 ‘동산무한서(洞山無寒暑)’에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때 한 승려가 동산(洞山) 선사께 “추위와 더위가 닥쳐오면 어떻게 회피(廻避)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해 동산 선사, “왜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을 향(向)해 나아가지 못하는가?”라고 응답했다. 이 승려가 다시 “어떤 곳이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산 스님, “추위가 오면 추위를 죽이고[한시한살(寒時寒殺)], 더위가 오면 더위를 죽여라![열시열살(熱時熱殺)]”라고 답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산 스님께 묻고 있는 이 승려는 불교를 온몸으로 체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던 의학도(義學徒)였습니다. 따라서 이를 측은하게 여긴 동산 선사께서 이 승려에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밥이나 축내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추위가 오면 추위와 철저히 하나가 되고 더위가 오면 더위와 철저히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수행에 힘쓰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선가(禪家)에서는 ‘살(殺)’이라는 자(字)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죽인다’라는 뜻이 아니고, 이원적(二元的)인 분별없이 바라보는 사물(事物)이나 처한 상황(狀況)과 철저히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멋지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한 번 이 화두와 씨름하면서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올 여름 무더위를 철저히 죽이며 멋지게 정면 돌파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9년 9월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한편 1975년 10월 임제종 양기파의 법맥을 이은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이셨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2009년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실천회로 새롭게 발족)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한편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 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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