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환전소 앞에서 사람들이 돈을 바꾸고 있다. 터키 리라화는 최근 가치가 급락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의 불안 역시 확산되는 중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터키 금융시장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7월 말 4.91리라였던 리라·달러 환율은 8월 8일 5.28리라로 높아지더니 13일에는 6.88리라까지 치솟았다. 터키 화폐가치의 폭락사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여타 주요 신흥국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 ‘응급처치’ 가로막는 에르도안의 세 가지 실책

노무라증권 인터내셔널의 조던 로체스터 통화분석가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터키 사태를 ‘매닉 먼데이’에 비유했다. 짧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터로 나가야 하는 근로자의 고뇌를 다룬 미국 밴드 ‘뱅글스’의 노래에서 따온 표현이다. 주요 신흥국 금융시장이 13일 월요일(현지시각)에 대거 폭락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조던 로체스터는 터키가 통화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세 가지 선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 인상과 IMF의 도움, 그리고 리라화에 대한 시장의 신뢰 회복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세 가지 선택지 중 어느 것도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 원인은 대부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있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그 자체로 통화의 가치를 나타내며, 통화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장 자주 이용되는 제도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해외 언론과 경제연구소들은 리라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터키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기준금리를 10%p 인상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 서민 정책을 펴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를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빈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부르며 경제안정도구로 이용하길 거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터키발(發) 통화위기를 진압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세계 최고 수준인 45%까지 인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도 꺼리고 있는데, 일부분 합리적인 측면도 있다. IMF는 구제금융을 제공하며 터키의 정치·경제적 독립성도 상당히 침해할 가능성이 크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정책 역시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워싱턴에 본부를 둔 IMF의 정책권고를 수용한다는 것은 미국을 적대하고 있는 터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터키가 IMF의 도움 없이 금융시장을 재건하고 인프라 투자를 유치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길이다.

시장의 신뢰회복 역시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과제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 때문에 터키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땅에 떨어진 상태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앙은행 위원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재무장관 자리에는 자신의 사위를 앉혀두고 있다.

◇ 얼어붙은 미국·터키 관계, 통화위기 장기화시킬 수 있어

지난 2017년 터키는 G20국가 중 가장 높은 7.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급격히 늘어난 외화 빚, 높은 물가상승률이 있었다. 최근 악화된 미국과의 관계는 터키의 부실한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 측에 지난 2016년 간첩 혐의로 체포된 앤드류 브런슨 목사를 석방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백악관은 1일(현지시각) 터키 내무부와 법무부의 고위 관료에게 미국 내 재산권을 박탈하는 제재를 가했고, 10일(현지시각)에는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13일(현지시각)에는 F-35 전투기를 터키에 팔지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하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국제금융센터는 13일 발표한 ‘터키 금융시장 패닉 및 관련 영향 점검’ 보고서에서 “터키 정부의 외교적인 노력이나 위기 타개 능력이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현 단계에서 추가 위기로 확산되지 않기 위해선 미국·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이나 IMF 구제금융 요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한 에르도안 행정부의 의지가 부족해 “단시간 내에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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