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언론은 당신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은 뉴욕타임스의 16일자 신문.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미국시각으로 지난 16일, 출근길에 신문을 사 든 시민들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편협함을 고발하는 사설을 읽었다. 보스턴 글로브의 마저리 프리처드 부편집주간의 요청으로 현지 언론사들이 ‘반 트럼프 사설 연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보스턴 글로브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은 언론사는 모두 380곳에 달한다. 주된 내용은 ‘가짜 뉴스’ 논쟁을 비롯한 언론의 자유였다.

◇ “우리는 시민의 적이 아니다”

보스턴 글로브 편집부가 선택한 사설 제목은 “저널리즘은 적이 아니다”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과 마찰을 빚은 진보 성향의 언론사들을 “미국 민중의 적”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반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받은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곤 했으며, 백악관 역시 비판적이 태도를 보였던 언론사들에게 고압적으로 대응해 왔다. 퀴니피악 대학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의원 중 51%가 언론이 미국 시민의 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는 주범으로 지목한 매체는 뉴욕타임스와 NBC뉴스, ABC·CBS·CNN 등이다. 대부분 중도 혹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언론사들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자유 언론은 당신이 필요하다” 제하 사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정한 보도를 위한 언론의 역할에 관심가질 것을 요청했다.

보스턴 글로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날 미국 전역에서 약 380곳의 언론사가 사설을 게재했으며, 민주당 지지성향이 높은 동북부의 주들에서 특히 참여율이 높았다. 24곳의 언론사가 참여한 매사추세츠를 비롯해 버몬트와 뉴햄프셔, 코네티컷, 뉴저지 등지에서 다수 매체가 동참했다. 반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지역으로 뽑히는 몬태나와 아이다호, 네바다 등에서는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다. 와이오밍에서는 단 한 곳의 언론사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트위터를 통해 반격에 나섰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으며 “나는 미국에 언론의 자유 외에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 언론사가 정치적인 이슈를 편향되게 다루면서 거짓 정보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 ‘독립성 훼손’ 이유로 불참한 매체도 있어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거대 매체부터 소규모 지역 언론사까지 수많은 신문들이 보스턴 글로브의 운동에 참여한 반면, 이날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설을 싣지 않기로 결정한 진보성향의 유명매체들도 있다. 이들은 대신 자신들이 왜 ‘반 트럼프 사설 연대’에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 알리는 글을 썼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많이 읽히며, 서부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LA타임스는 매체의 독립성을 이유로 ‘사설 연대’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LA타임스 편집부는 “(반 트럼프 사설을 싣지 않은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냉소적이고 선동적이며 불공정하다는 것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면서도 “LA타임스가 다른 언론사들의 의견을 따른다는 인상을 남기거나, 집단사고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역시 “(언론사들이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보스턴 글로브의 주장에는 특정 이슈에 대한 의견을 통합하겠다는 뜻이 내포돼있다”며 언론사의 독립성을 위해 다수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사설 연대 사태가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국가적 세력이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백악관과 공화당 지지자, 폭스뉴스를 비롯한 보수언론에게 비판할 상대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공동행동이 정말 그렇게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앞으로 관세와 기후변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을 통해 언론사들의 단체행동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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