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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재판, ‘위력’ 아닌 ‘비동의’ 쟁점 된 이유
안희정 재판, ‘위력’ 아닌 ‘비동의’ 쟁점 된 이유
  • 조나리 기자
  • 승인 2018.08.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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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안희정 전 지사의 재판 후폭풍이 거세다. 재판부가 ‘위력’의 개념을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입법화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사법부가 입법 미비를 거론하며 국회로 공을 돌렸기 때문이다. ‘미투’ 사건의 정점에 있는 안 전 지사 사건이 새로운 성폭력범죄 처벌 체계를 끌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 안희정 전 지사, 적용 혐의는?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성폭력 혐의 선고 공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에게 적용된 3가지 혐의는 다음과 같다.

①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0조(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형법 제303조(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형법 제298조(강제추행)
: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중 형법상 강제추행죄의 경우 안 전 지사는 ‘기습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추행은 법률에서 규정한 ‘폭행 또는 협박’이 없더라도 기습적으로 추행을 하는 경우에도 성립된다. 이에 따라 안 전 지사는 김씨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기습추행 5회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우선 재판부는 도지사라는 지위와 비서의 관계는 ‘위력’이 존재한다고 봤다. 그러나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해’ 4회의 간음과 1회의 추행을 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씨의 진술도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5회에 걸친 기습추행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해자의 진술과 같이 업무상 상하관계에 따라 반복된 추행이라면 기습추행으로 보기도 어렵다”면서도 “모로 보더라도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즉, 기습추행 부분도 굳이 혐의를 적용한다면 형법상 기습추행(강제추행죄)이 아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역시 증거 불충분에 따라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선고에 대한 여성단체 기자회견'에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비동의 간음죄’, 이번엔 입법화 될까

안 전 지사의 1심 판결 후 여성계와 법조계에서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했다. 그간 여성계에서는 형법상 강간죄와 유사강간죄, 강제추행죄에서 요구하는 ‘폭행 및 협박’ 여부를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11년 전에 이미 국회 입법 발의가 이뤄진 적이 있었고,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올해 3월 강간의 정의를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의 부족’으로 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는 대부분 성범죄 가해자가 직장과 학교 등에서 마주치는 면식범이고, 성범죄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선 여성이 폭행과 협박을 감수해야 한다는 문제점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입법 논의도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선종문 썬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성범죄의 판단 여부를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개선하는 작업은 필요하다”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도 함께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 변호사는 이어 “최근 판례에서도 폭행과 협박의 범위를 성적자기결정권으로 넓게 인정하는 추세긴 하다”면서 “다만 이를 입법화 할 경우 당사자간 의사 합치의 혼란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장치 및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 전 지사가 적용된 혐의는 폭행 또는 협박을 요하는 형법상 강간죄나 강제추행죄가 아니다. 강제추행의 경우 안 전 지사는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성립되는 기습추행 혐의를 받고 있고, 나머지 2개 혐의 역시 ‘위력의 행사’ 여부가 사건의 쟁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 전 지사의 재판 후 왜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논의가 거세졌을까.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비동의 간음죄) 관련 여야 여성의원 긴급간담회’에서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재판부 한마디에 불붙은 논쟁

안 전 지사의 재판이 폭행 및 협박 여부가 쟁점이 아니었음에도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는 이유는 재판부의 선고 내용 때문이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태도나 말 등에서 거절하는 내심이 있었다는 취지로 볼 수 있었다”면서도 “이 사건은 피고인의 위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따라 가벌성이 달린 것이지, 피해자의 생각에 가벌성이 달린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른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부동의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 처벌하는 체계)’이 입법화 되지 않은 현행 법제 하에서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다는 증명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처벌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입법부에 공을 넘겼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비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충분히 위력의 행사를 인정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위력’은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이고,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에 ‘위력의 개념’과 ‘비동의 간음’에 대해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미 재판부도 안 전 지사의 위력의 존재는 인정했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해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자칫 비동의 간음죄가 입법화되지 않을 경우 이 판결이 향후 위력에 의한 성범죄 사건의 기준처럼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비동의 간음죄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입법화 작업도 추진돼야겠지만 위력의 의미에 대해서도 항소심에서 다시 판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