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난 23일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도 2분기 가계동향조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소득 양극화를 보여 주었네.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증가했지만,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어.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5.23배였거든. 쉽게 말하면, 전국 2인 이상 가구 중 상위 20%가 벌어들인 소득이 하위 20%보다 5.23배 많다는 뜻이야. 이는 2008년 2분기 때의 5.24배 다음으로 높은 수치라는군. 소득 양극화가 10년 만에 가장 심각하게 악화되었다는 뜻인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없네. 자본주의 체제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만물의 상품화’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돈을 매개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어버린 체제가 자본주의거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 없이 가질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건 이미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 믿기 어려우면 찾아보라고.

공기라고? 대기오염과 기후온난화로 인한 고생도 모두가 공평하게 겪는 건 아니야. 가난한 사람들은 싫어도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로 가득 찬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야 하지만, 부자들은 공기정화기로 깨끗해진 공기를 마시면서 쉬거나 오염되지 않은 곳으로 이전해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네. 폭염에도 부자들은 에어컨 펑펑 틀면서 일하거나 쉴 수도 있고.

사랑이라고? 요즘은 돈이 없으면 사랑도 못해. 서로 마음만 맞으면 된다고? 물론 그런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원시인 취급 받기 딱이야. 점점 혼자 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가 뭐겠나? 돈 때문이여.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고? 돈 없으면 부모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된지 언제인데… 그러니 모든 게 상품화된 사회에서는 인간 대접 받으면서 살려면 누구나 다 돈이 필요해.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에 기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지. 이른바 시장의 자유경쟁에 맡기면 필연적으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올 수밖에 없어. 인간들, 특히 부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야. 돈은 바닷물 같아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목마르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맞아. 평생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돈을 벌려고 추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야. 그러니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의 몫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지난 2분기 소득 분포가 10년 만에 최악으로 양극화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어. 지난 두 보수정권이 신주처럼 떠받들었던 작은 정부와 트리클다운(trickle down), 규제철폐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고용 없는 성장’과 빈부 격차를 확대· 심화시킨 게 사실이거든. 그런데도 보수정당과 보수 언론들은 아직도 ‘시장의 자율경쟁’에 맡기라고 큰소리만 치고 있으니 뻔뻔한 건지 무식한 건지… 아마 그들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닌지 몰라.

“한국은 이제 최상위 소수에게 권력과 힘, 자원과 부가 집중된 난공불락의 과두국가가 되었다. 상층 과두영역은 차고 넘치지만 그 밖은 부족하고 가난하다. 따라서 재벌체제를 포함한 자원과 이익이 집중된 상층 과두체제와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하지 않는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고, 효과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자칭 합리적인 보수신문이라는 <중앙일보>에 실린 연세대 박명림 교수의 칼럼 중 일부네. 박 교수 말대로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어느 부문이든 자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쳐서 문제일세. 규제 받지 않은 자유의 결과가 ‘과두화와 불평등’인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점점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까? 싫든 좋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네. 솔직하게 말해서, 이미 구조적으로 심화된 양극화 현상을 정부 아니고 누가 완화시킬 수 있겠는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일 할 수 없는 노인과 장애인들에게는 공공부조를 통해 이전소득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일을 정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금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은 흔들림 없이 지속되어야 하네. 여기서 멈춘다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마저 양극화된 우리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지 못 한다면, 이 땅에서 복지국가는 영원히 꿈으로만 남게 될 걸세. 의식 있는 시민들의 인내와 격려, 더 나아가 지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임이 분명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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